새전북신문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7월 15일 15시08분

[인문학 속 클래식]........그림 속 클래식 vol.2 고전-2

베토벤과 고야 / 절망을 예술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고야의 판화, ‘카프리초스(변덕)’ 중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퀸타 델 소르도

어둠과 적막이 내려앉은 집, 마드리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대저택의 넓은 벽면엔 온통 어두운 회반죽이 칠해져있다.

건강과 청력을 잃고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시달리던 노년의 화가는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 채 이 곳에 칩거한다. 퀸타 델 소르도(Quinta del Sordo), ‘귀머거리의 집’으로 불린 동굴과도 같은 이 곳에서 그는 오롯이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저택의 벽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그림들인 , , , ,, 속에는 이상하고 괴기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서로를 학살하는 사람들, 염소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마녀들, 운명의 실을 짜고 잇는 여신들, 곤봉을 들고 죽일 듯 싸우는 사내들, 물에 잠겨 살려달라는 애처로운 강아지 등이 등장하고 그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공포와 불안이 가득하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그림은 이다.

자신이 죽인 자신의 아버지 ‘우라누스’로부터 들은 저주 ‘너도 네 자식에 의해 파멸될 것이다.’가 두려워 자신의 자식들을 잡아먹은 사투르누스(크로누스)를 그린 이 작품.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서 있는 알몸의 거인 사투르누스는 거친 회색 갈기머리에 거대한 몸과 부릅뜬 눈, 시체를 움켜쥐고 있는 피 묻은 손마디가 섬뜩하게 공포를 자아낸다. 140년 전 그려진 루벤스(R.R.Rubens)의 동명의 그림 또한 무섭고 생생하지만 고야의 그림은 보는 순간 그림 속 사투르누스를 마주하는 듯 하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의식을 치르다 들킨 사투르누스와 한 공간에 있는 듯 부릅 뜬 그의 눈빛에 관객 또한 온 몸이 굳는다.

청각상실에서 온 고립과 단절, 매독균으로 인한 고통과 환영속에서 삶을 지속해야 했던 고야. 종교재판으로 궁중화가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목숨만 겨우 부지할 수 있었던 고야. 반도 전쟁으로 인해 살육과 잔인함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시대를 목도하며 그림으로 철저히 기록했던 고야. 그의 삶의 거친 질곡들은 말년의 대화가에 의해 응축되고 승화되어 연작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고야는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 찬란한 ‘화양연화’의 시절을 보냈던 화가이다. 뛰어난 재능으로 촉망받던 젊은시절, 고야의 삶은 그의 테피스트리 작품 속 색채처럼 따사롭고 밝았고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처럼 아무런 걱정 없이 전도유망했다. 초상화가로 유명해 귀족과 왕가로부터 끊임없이 주문이 밀려들어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고 황제의 전속 화가였으며 곧 궁중화가에 임명되어 명예를 드높이며 최고의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인생엔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고난이 찾아온다. 1792년, 36세에 매독으로 인한 고열로 생사의 고비를 넘은 그는 결국 청력을 잃고 깊은 좌절과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식민지로 엄청난 부를 쌓은 스페인이 그 부패의 징표인 매독으로 신음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야는 청력 상실을 겪으며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주문작품에서는 그릴 수 없던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요소들을 관찰하며 집중하게 된 것이다. 고야로 인해 이제 회화는 작가의 내면, 광기, 순간의 감정을 포착해 그리는 근대 회화의 시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또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에 깊은 감화를 받은 그는 자유주의자로써 정치적, 사회적 악습을 비판하는 작품을 남기게 된다. 대표작으로 동판화 작품집 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작품 속에서 고야는 가톨릭 성직자들을 괴물이나 악마로 묘사해 미신에 사로잡힌 스페인의 풍조와 부패한 가톨릭 교회의 실상을 고발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총아이자 유럽 지식인과 민중의 등불이자 희망이었던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하게 된다.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고야 또한 나폴레옹을 추앙했지만, 나폴레옹은 고야의 조국 스페인을 침략했고 이에 거세게 항거하는 스페인의 민중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유린했다. 고야는 그림을 통해 잔혹한 프랑스군의 만행과 인간이 가진 악마성을 고발하였는데 이는 과 , 이란 작품으로 남겨진다.

1810년 프랑스군이 물러가고 페르난도 7세가 왕위에 복귀하였으나 고야는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드리드 외곽에 대저택을 구해 칩거에 들어간다. 이 집이 바로 ‘퀸타 델 소르도’, 즉 ‘귀머거리의 집’이다. 고야가 이 곳에서 남긴 연작은 작품에서 보여지는 악몽 같은 환상과 냉소적이며 염세적인 절망을 반영하는 초현실주의, 인간의 순간적 감정을 극대화하는 그림들은 표현주의의 새 장을 열며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고야와 베토벤의 공통점

동시대, 즉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를 살았던 고야와 베토벤 사이엔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로 당시 유럽을 휩쓸던 자유와 혁명의 정신과 나폴레옹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시대의 천재이자 계몽주의자였던 두 사람 모두 나폴레옹을 옛 유럽의 구습을 타파하고 계몽주의의 새로운 세계를 선사해 줄 희망으로 여겼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의 삶의 터전은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유린당했고 그 자신과 지인들은 참혹한 실상을 겪어야 했으며 결국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에 올라 민중의 희망을 철저히 짓밟았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위해 쓴 혁신적인 교향곡 의 표지에서 나폴레옹의 이름 ‘보나파르트’를 거칠게 지워버렸고, 고야는 나폴레옹 군대애 대한 분노를 담아 과 을 남겼다.

둘째로 두 사람 모두 청각장애를 겪었다. 두 사람 모두 매독으로 인한 청각장애를 겪었는데 고야는 부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독의 후유증과 청각장애에서 비롯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매독균이 머리로 올라올때면 극심한 고통을 겪고, 환영을 보게 되었는데 그 기괴함은 와 같은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부터 난청을 겪고 말년의 18년 동안은 완전히 들리지 않은 가운데서 작곡을 하였는데 음악가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청각장애라는 시련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더욱 예술의 길에 정진한 그의 초인적 면모는 후대에게 악성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게 된다.

셋째 두 사람은 작품의 혁명성 측면에서도 굉장히 닮은 예술가들이다.

고야는 전통적인 구도나 주제를 따르는 듯 하면서도 당시 유행하던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대상에 대해 이성에 입각한 거리감을 확보함으로써, 전통을 해체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베토벤은 이전의 음악과는 달리 예측을 벗어나 급격하고 순식간에 변화하는 악상의 대조를 통해 극과 극의 감정을 표현해냈는데 이를 통해 음악은 이전처럼 대화의 배경으로 편히 듣는 것이 아닌 감상 자체에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는 예술로 정체성이 변모되었다. 또한 방대해진 곡의 길이 속 불협화음의 사용으로 청중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였는데 이러한 베토벤의 음악에 당시 관중들은 큰 충격을 받고 듣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 그들에게 베토벤은 “내 음악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넷째 두 예술가들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베토벤은 뒤에 등장한 슈베르트, 리스트, 브람스와 같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베토벤의 자유와 인류애를 향한 정신은 화가 클림트(G.Climt)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쳐 빈분리파의 정신을 담은 체제시온 전시관에 베토벤 조각상과 벽화 ‘베토벤 프리즈’를 남기게 한다.

고야 또한 후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들라크루아, 마네, 고흐 등이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보이지 않는 공포와 환상을 시각화한 작품들에서 크게 영향을 받고 고야를 근대 미술의 선구자로 존경하였다.

또한 스페인의 대표적 작곡가 그라나도스(E.Granados)는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피아노 작품집 ‘고예스카스(Goyescas)’, 즉 ‘고야풍으로, 고야처럼’이란 뜻의 이 작품을 남겼는데. 이 곡은 고야의 전람회를 보고 얻은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예술의 길을 치열하게 살아간 두 예술가 고야와 베토벤. 이들의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작품들은 오래 남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