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7월 14일 13시54분
[온누리]화장실
농사를 지으려면 거름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화학비료를 쓰지만, 이전에는 분료를 썼다. 가축의 우리에 짚이나 풀을 깔아 분료가 묻은 두엄을 뿌렸다. 그뿐 아니라 사람의 대소변도 요긴했다. 측간이라고 부르는 곳에 커다란 항아리를 묻고 똥오줌을 받아 주로 밭에 뿌렸다.
농부가 자기 똥을 안 먹으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똥오줌을 거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농경 민족에게 화장실은 배설 공간이자, 농사 밑천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목민들에겐 화장실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정착 생활에도 화장실은 갖추지는 않았다.
중세 이후까지 유럽의 주택은 말할 것도 없고, 무려 2,000여 개의 방을 지닌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다. 아무 데나 볼일을 보거나, 일부는 요강을 든 하인을 대동했다. 요강이 가득 차면 정원에 뿌렸으니 악취로 가득했다. 장 자크 루소는 ‘사람들이 아무 데나 대소변을 보는 바람에 악취가 진동해 숨을 쉴 수가 없다.’라고 통탄했다.
흘러 다니는 오물을 피하려고 굽을 높이면서 하이힐이 생겼다고 한다. 세련된 여인들의 패션 마침표인 하이힐의 기원을 짚어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비위생적인 문화가 결국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패스트를 불렀다. 화장실 부재가 가져온 참혹한 결과였다.
오랫동안 농경을 해 온 우리의 경우 분료의 재앙은 없었지만, 농사와 거리가 먼 도시의 사회문제가 되기는 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분료가 골칫거리였던 같다. 박제가는 ‘냇가나 거리에 분뇨를 함부로 버리고 있다. 다리 밑을 보면 인분이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큰 장마가 아니면 씻기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화장실 강국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공화장실 관련 법이 있고, 해마다 ‘아름다운 화장실’을 선정 시상한다. 그러나 88올림픽 이전 우리의 화장실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똥 냄새는 한국 혐오로 이어지기도 했다.
인도의 경우 2014년 기준 6억 명이 노상 배설을 한다. 이들의 배변량만 하루 6,500만㎏에 달한다. 같은 해 취임한 모디 총리는 ‘노상 배변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1억 개의 화장실을 지어, 청결과 위생 수준을 높이겠다는 ‘클린 인디아’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 1억 개의 화장실은 무용지물이 됐다. 청소가 안 된 화장실이 똥보다 더러워서다. 청소는 물이 필요한데 마실 물도 부족한 인도에서 화장실까지 급수는 아직 멀어 보인다. 인류의 역사는 똥오줌과의 전쟁이라고 본 이영숙 작가의 ‘변기에 빠진 세계사’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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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7-1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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