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철서염(東鐵西鹽)-고창염전 기억하다
황재남(사진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옛부터 철과 소금의 가치를 알고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통치한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전북은 동북쪽 산악지역은 철산지가 유명하고 서남쪽으로는 질 좋은 소금을 생산하다보니 이렇게 불리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필가가 완주에서 관방통신유적을 여러해 동안 연구하다보니 완주는 봉실산을 기점으로 고산면 동북부지역은 높은 산과 골짜기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한 금만정맥 줄기를 따라 산정에는 많은 산성과 봉화대가 그물망처럼 펼쳐져 있고 대둔산 아래 옥계동과 써래봉을 중심으로 시우동과 신흥계곡 등 여러 골짜기에는 제철유적과 자기터 등이 감추어져 있어 전국 최대 규모의 밀집도를 보여 준다. 그러는 사이 필자는 고향인 고창지역 문화유적을 사진으로 아카이브에 열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바다가 접한 지역인 심원 해리 상하 염전(西鹽)을 찿아 빠져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만들어진 고지도를 살펴보면, 심원면 고전리 삼양염전을 주변으로 적당이 크고 작은 염전이 많았음을 지도는 보여준다. 그때는 바닷가 마을 주민들이 소금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바둑판같은 삼양염전의 그 넓은 소금밭에서 생산해 내는 소금의 양은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해리천은 무장면 월림과 죽림 사이를 시작으로 궁산 앞을 지나 금평들을 적시고 동호에서 바닷가 짠물과 한몸을 이룬다. 삼양염전에서 생산한 그 많은 천일염은 해리천을 가로질러 일제 강점기에 새워진 금평교를 지나 공출되었을 것이다.
금평이라는 지명과 다리 이름에서도 그시절 소금의 가치가 느껴진다. 지금은 금평교 다리 아래쪽에 천일염 가공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삼양염전 근처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던 양돈희씨는 하얀 눈같은 소금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소금밭에서 축구도 하며 뛰놀던 그 때를 지금도 생생이 기억하고 있다. 또한 삼양염전 근처에는 옛날 염전에 삶을 맏기며 살았던 염부들의 집과 염전 사무실이 고스란이 남아 있다. 그때의 영화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필자는 지도에 나와 있는 바닷가 마을 염전을 두루두루 찿아가 보았으나 흔적만 조금 있을뿐 예대로인 곳이 한 곳도 없다. 갈대만 무성할뿐..... 삼양염전 빈터에는 새로운 시설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월이 흐른 것이다. 천년고찰 선운사에는 보은염이라는 검단선사에 관련된 향기로운 옛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를 기억하며 지금도 봄 가을에 보은염 행사를 열고 있다고 한다. 선운사 주변에 염전이 많았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도 소금의 가치를 빼놓을 수 없다. 사람도 말이나 행동이 조금 논리에 맞지 않을때를 빚대어서 '싱거운 사람'으로 말한다. 옛 선인들은 소금의 가치를 황금보다 더 생각했을까. 그러고 보면 소중한 것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구루 길가에 돌멩이 하나도 허트로 볼일이 아니다. 소금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다.
지면 : 2024-07-1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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