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 향기와 소나무 정기로, 송영구선생의 정신을 잇다
진천송씨 충숙공파 우산종중, 우산정사에서 '충숙관(忠肅館)' 낙성
진천송씨 충숙공파 우산종중이 13일 오전 11시 완주군 봉동읍 우산종중 우산정사에서 '충숙관(忠肅館)' 낙성식을 갖는다.
충숙공 표옹 송영구(1556-1620)선생의 정신을 잇고자 진천송씨 충숙공파 우산종중의 다목적관 건물을 지은 것.
종회는 물론 시제 등 제사, 그리고 학습에 이르기까지 가문의 대소사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충숙관'은 '기억(ㄱ)'자 누마루 건물로 50 여 평으로 완성, 종중의 용솔, 삼정승 소나무와 연꽃 등을 전통 꽃담으로 구현했다. 누마루 대들보는 종중의 상징 우산솔을 채취에 만들었다.
이곳엔 송만규화백의 작품이 걸렸다. '우산전경도'는 충숙공파 우산종중 우산정사를 배경으로 담았다.
송호택 우산종중 의장은 “'충숙관' 낙성에 감회가 더욱 새롭다”면서 “ "훌륭한 조상을 둔 우리 진천송씨 자손으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했다.
이어 "전국 각지에서 참제해줄 종중 여러분들을 생각, 우리 진천장문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됐다. 오늘을 계기로 우산종중 후손의 화합 단결은 물론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충숙공 표옹 송영구는 익산에서 출생, 1584년 친시문과에 급제, 승정원의 주서와 사과를 역임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도체찰사 정철(鄭澈)의 종사관을 지냈다.
이후 사간원정언을 거쳐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에 사직하고 낙향했다. 송영구는 1599년 관직에 복귀, 충청도도사와 지평을 거쳐 1600년 이조정랑·의정부사인·사간원사간·청풍군수 등을 역임했고, 필선으로 재임 중 '선조실록(宣祖實錄)'편찬에 참여했다. 1612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냈고, 1613년에는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현재 광암리에 남아 있는 선생의 집 '망모당(望慕堂)'의 당액(堂額)은 송영구가 사신으로 갔을 때 사귄 명나라 관리 '주지번(朱之蕃)'이 쓴 글씨이다. 1614년 송영구는 오위도총부부총관과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했고, 1615년 이이첨이 권력을 장악하고 폐모론을 일으키자 이에 반대하다가 파직당했다.
저서로 '표옹유고(瓢翁遺稿)'가 전하며, 묘소는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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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7-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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