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7월 07일 14시42분
[온누리]동정호(洞庭湖)
‘오래전 동정호에 대하여 들었건만(昔聞洞庭水),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今上岳陽樓). 오와 초는 동쪽 남쪽 갈라 서 있고(吳楚東南瞬), 하늘과 땅이 밤낮 물 위에 떠 있네(乾伸日夜浮)’. 당나라의 시인 두보의 시 등악양루(登岳陽樓)는 이렇게 시작된다. 동정호를 그리워하던 시인은 드디어 악양루에 올라 하늘과 땅이 떠있을 정도의 광활한 호수에 감탄한다. 그러나 ‘싸움터의 말이 아직 북쪽에 있어(戎馬關山北),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憑軒涕泗流)’라며 전쟁으로 인한 우울한 심정을 드러낸다.
동정호는 중국 후난성(湖南省)에 위치한 호수이다. 한때 중국 최대의 담수호였으나 장강에서 밀려든 진흙과 모래 유입에 좁아져 두 번째로 밀렸다. 현재 제일 큰 호수는 장시성의 포양호다. 평상시의 면적은 2,820km2로 완주군과 진안군, 장수군과 무주군을 합한 면적 정도이나, 6월과 10월 우기가 되면 전남과 전북을 합한 면적인 2만km2로 확장된다.
수원은 상수(湘水)와 자수(資水), 원수(沅水), 예수(澧水) 등 네 곳이다. 그중 상수는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투신자살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굴원의 시체를 찾기 위해 상수로 배를 몰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 오늘날 용선 경기이다. 용선은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굴원을 기리는 제사에서 유래한 단오 역시 동정호에서 시작됐다. 간신들의 시기와 모함에 시달리던 굴원은 자신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상수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다. 그날이 5월 5일이다. 굴원을 흠모했던 백성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5월 5일이면 제사를 지냈다. 그것이 단오이다.
동정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신비의 호수로 두보와 같은 시인묵객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특히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인 군산(君山)은 도인들의 은신처로 여겨졌다. 그리고 군산에서 생산되는 차가 그 유명한 군산은침(君山银针)이다. 이 차는 청나라 황실에 바쳐졌다.
최근의 폭우로 인해 동정호의 제방이 무너졌다는 소식이다. 규모가 큰 만큼 피해도 커지고 있다. 6,000여 명의 주민들은 대비했지만, 주택과 농작지 침수 등 상황이 심각하다. 범람을 막기 위해 돌과 모래는 물론 차량까지 투하하고 있으나 제방 유실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신비의 동정호가 재앙의 호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가 가져올 변화에 관심을 갖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터가 무덤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4-07-08 8면
http://sjbnews.com/820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