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6월 30일 15시22분
[신생전북]동학 이전 동학과 동학 이후 동학
29, 신생문명의 동학(動學)민주 이후에 만주고,
평등 이후에 무등이며,
사회주의 이후에 무의 연결이고,
도시 이후에 농시고,
시장 이후에 마당장터다
동학 접주 김인배 장군의 생가지 김제시 봉남면의 모내기 끝난 들녘, 하늘과 땅이 마주하며 새생명이 신령하게 자란다.
전주천 남천교에서 바라본 곤지산 초록바위다. 이곳은 동학인들과 서학인들이 처형된 성지다. 새문명을 상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전주시가 이곳에 랜드마크 전망대 공사 등을 한다는데 제발 그냥 놔두면 좋겠다.
1. 오심즉여심의 판타지, 민주 이후 만주
타자를 주체화하는 것은 폭력이다. "타자는 (주체로)환원할 수 없는 경우에만 타자"라는 레비나스의 언명은 타당한가? 공동체는 타자를 주체화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타자가 국민, 민족, 시민이 되는 경우 국가공동체, 민족공동체, 시민공동체는 여하한 경우라도 폭력체가 된다. 그러나 이 공동체에서 주체화된 이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 푸코의 말을 쓰면 "훈육"된 것이다. 하여 억압을 공동체의 미덕으로 여기게 된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법은 소유권 투쟁에서 일방의 굴종태이며 공동체는 일방의 굴종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 민주공화정 공동체의 민낯이다. 따라서 근대(시민, 인민, 직접)민주는 공동체 주체 폭력의 기만적 이름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수운의 "오심즉여심"을 상고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언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직역하면 "하늘님인 내 마음이 수운 너의 마음이다." 장일순은 이를 "나는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걸어서 10분 거리 목적지를 가는데 한나절이 걸렸다는 것은 걷는 동안 마주치는 무수한 타자들, 꽃, 강아지, 고양이, 돌맹이, 김씨, 이씨, 아이, 주부, 김군, 이양 등을 내 안으로 모시느라, 안부를 묻고 대화하느라 10분이 한나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오심즉여심"이라 했을 때의 하늘님 상태, 수운의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운은 '천', 자신이 만난 '하늘님'을 규정하지 않았다. 천을 무어라 규정했다면 동학은 동학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었을 것이다. 억조창생 모두가 하늘님이기에 규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대의민주 이후에 만인만물이 주인이 되는 만주(萬主)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 개벽은 미래 신화적 상상력의 총체다
조선 시대에 성리학에 대한 도전은 있을 수 없어서, 허균이나, 정여립처럼 다른 생각을 품은 이들은 공부를 하면 즐겁기는 커녕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왕에 대한 인의예지신을 어기는 일이라 능지처참밖에 없다.
유학의 민본이란 통치자의 논리이고, 그건 어디까지나 왕은 왕으로서 신하는 신하로서 천명의 직분을 사수하면서 도전하고 덤비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뜻에서의 태평성대의 논리다.
어질 "인"을 만물에 확대하고, 평등보다 위인 만물무등(萬物無等)이라 한다면 왕 따위는 있을 수 없게 된다. 그 민본이라는 게 만물무등일 리 만무하다. 수운은 만물무등을 주장했던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 스승을 비판하는 것은 서구에서는 전통의 미덕이고, 박사 학위를 따면 스승, 제자도 곧 동료관계가 되는데, 인의예지신의 해동에서 박사 학위 땄다고 어딜 감히 부뚜막에 오르겠는가? 회사에서 경영진에 소신 발언하면 민본의 나라에서는 불경죄가 되고 만다. 당 대표에게 인의예지신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면 다음 공천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내 생각에 근대민주 이후에는 만인만물이 모두 주인이 되는 만주여야 한다. 그런데 만주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미래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신화, 판타지의 영역이다. 고대의 신화란 당대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으니 포세이돈이 성이 나서 바다에 폭풍우가 일고 파도가 친다고 여긴 것이다. 우리로서는 용왕이 노한 것이다.
미래는 뛰어난 천재가 기획하는 게 아니다. 미래 신화적 상상력이 얽히고 얽혀서 그게 공통의 이야기가 되고 희망의 빛이 되고 열망이 될 때에 주체도 탄생하고, 현실적 실천력도 생긴다.
미래신화란 어디서 솟는가? 캄캄한 어둠에서 생긴다. 혼돈의 죽음에 처한 이들만이 죽음에서 미래 신화를 잉태한다.
이웃 없는 고독과 채권추심 전화와, 죽어라 일해도 아내도 일터에 내보내야만 하고, 아이조차도 돈을 내고 어린이집에 맡기며, 발을 동동거리는 이들, 팔레스타인, 독재에 고통받는 이들 - '명계'(김지하)에 있는 이들에게서 미래신화가 나오지, 이재용, 빌게이츠, 테슬라, 애플, 메타, 시진핑, 푸틴, 마르크스, 수운, 해월, 전봉준에게서 나올 리 만무다.
수운팔이, 해월팔이, 동경대전 풀이가 동학이 될 수 없다. 수심정기하라는데 지금 상태로 수심정기하면 동학은 보수철학이 되고 만다. 동학이고, 맑스고, 아나키즘이고,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의 대지•자연무등의 삶이거나 간에 미래 신화적 상상에서 소환되는 것이지, 거꾸로 그것들을 재해석하거나 부풀리는 게 아니다고 본다.
내 생각에 개벽은 미래신화적 상상력의 총체를 말한다.
민주 이후에 만주고, 평등 이후에 무등이며, 사회주의 이후에 (주의 없음의) 무의 연결이고, 도시 이후에 농시(들시, 숲시, 바다시, 숲시)고, 시장 이후에 마당장터라고 필자는 심고한다.
3. 동학 이전의 동학과 동학 이후의 동학
사실에 근거하지만 사실만으로 이 땅의 이야기와 마음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민중들이 길러 온 마음이 하늘님 마음이다. 대내림의 이 입 저 입, 이 사랑방, 저 사랑방을 거쳐서 민중의 염원이 담긴 미학이 집단 창작된다.
역사학은 사실에 근거하지만, 가슴을 데우는 것은 한 편의 민요가 더 뛰어나다. 대대로 내려온 하늘님 마음이 있어서 수운이 창도한 동학만 동학인 것은 아니다.
정여립의 기축옥사 때 호남선비 1200여 명이 도륙당했다면, 그에 딸린 수 만 명의 피붙이들과 노비들과 동무들이라고 온전했겠는가? 조선은 이때 이미 호남을 버렸고 호남은 새 세상을 꿈꾸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게 1차 동학이다.
그럼 2차 동학은 무엇인가? 세인들은 이순신의 백의종군, 명량대첩 노량해전을 기억할 뿐이다. 들에서, 장터에서, 고샅길에서 굴비 엮듯 징집된 장졸, 목수, 격군들을 누가 기억하는가? 정유왜란 때는 전라도가 조선 전체를 대신하여 맞서고 있었다. 명군과 왜적의 전공을 위해 전라인의 코가 소금에 절여지고, 수 많은 전라인들이 노예로 유럽에 팔렸다.
명량대첩 후에 이순신 함대는 고군산 일대를 항해했다. 이것을 뒤집으면 명량대첩 후 눈이 뒤집힌 왜적들이 남해안 일대를 분탕질하고 도륙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산리대첩 후 경신참변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전라도는 조정에서도 버림받았으니 두 개의 적을 마주하고 있었다. 새 세상을 염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것이 2차동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운동학 이전에 정여립 대동계의 맥을 잇고, 조정에서 버림받은 이들에 의한 비밀결사인들 왜 없겠는가? 조선의 숭유억불에 따라 발생한 당추, 당취, 땡초 비밀결사와 '평민지식인'(백승종)의 결합은 필연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대목에서 그 최후가 확인되지 않는 승려 출신 서장옥이 주목된다. 수운이 남원 은적암 시절에 칼춤만 췄겠는가? 수운은 득도하기 이전에 주유팔로하면서 비밀결사와 접촉했을 것이란 상상도 가능하다. 일설에 따르면 연담 이운규를 스승으로 모시고 남학의 김광화, 정역의 김일부와 함께 수학한 적도 있다고 한다. 수운이 남원에서 조직한 세력, 기축옥사 이래 평민지식인 결사, 불가의 당추들이 서장옥과 전봉준, 김개남, 김덕명, 손화중 등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유불선의 개벽파들이 연대한 것이다. 그러니 유불선을 개벽한 새로운 선언문은 당연히 요청된다. 수운의『포덕문』은 유럽에서 19~20세기를 뒤흔든 1848년의『공산당선언 』과 같은 것이다. 수운 자신이 칼노래에서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포덕문은 당대체제에 대한 '선전포고문'이다.
조선말 경허선사의 여동생이 누구인가? 전녹두의 첫 부인 여산 송씨 아닌가? 이 통혼에서 서장옥의 역할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수운동학의 정점이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인데 이것이 3차동학이다.
기왕의 유불선 연대에 수운이 멀리했던 기독교가 연대망에 들어온다. 이게 4차동학 1919년의 3•1혁명이다. 3•1혁명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자 그렇다면 5차동학은 무엇인가? 동학(東學)은 동학(動學)이다. 동학은 수운의 말씀주의, 복음주의, 동경대전 풀이가 아니다. 동학(東學)은 자기개벽의 수련에 기반한 문명개벽의 동학(動學)이다.
나는 5차동학의 방향은 모른다. 그건 틀림없이 집단창작될 것이다. 서두르고 조바심낼 것도 없다. 동무들과 이 땅을 답사하면서 놀 때에 답은 온몸으로 통각된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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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7-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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