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6월 26일 09시41분
언론인 최은희가 신문 바깥에 남긴 발자취
황해도 배천에 학교를 세 개나 지은 교장 선생님 댁 막내딸 별명은 총각 아가씨였다. 은희라는 이름은 학교에 들어갈 때쯤에야 얻을 수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이름 가지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은희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달리기 시합에서 기발한 생각으로 일 등을 하기도 했고, 그 당시 대부분의 여자들 그리고 은희의 언니들과는 다르게 공부도 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지지와 허락을 받은 은희는 마침내 큰 도시의 여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공부하며 배움을 향한 열망이 더욱 커졌다. 일본에 짓밟히지 않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유학 장학생이 된 은희는 우선 일본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다. 그곳에서 독립운동 비밀 서클을 운영하는 박희도 선생님과 서클 동지들을 만났지요. 은희는 서클에서 활동하며 독립을 향한 의지를 다지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일제의 삼엄한 눈초리 아래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은희는 자신의 교복 치마를 내놓아 친구들과 함께 슬픔을 표현할 나비 상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삼십삼인이 독립 선언을 할 때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그 때문에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기도 했지만 은희는 용감하게 맞섰다. 일본 연호가 쓰인 졸업장을 거부한 은희는 이후 고향 배천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다.
배천에서의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갇혔던 은희는 풀려난 이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 3학년 여름 방학을 맞아 귀국한 어느 날, 신문사 기자로 입사하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은희는 아직 학생 신분이었기에 고민했지만 사람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기사를 쓸 수 있다면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여기자가 됐다. 은희의 첫 기사는 부인 견학단 수행기였다. 여성들과 함께 변화된 바깥세상을 체험하는 탐방 기사였다. 이후 은희는 변장 기자 탐방까지 성공하며 주목받는 여기자가 됐다. 그리고 더 궂은 곳, 험한 곳, 세상의 어두운 곳을 취재해 소외된 사람들을 조명했다. 6·10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잡혀가는 현장을 발견하고 기사를 쓸 만큼 기자 정신도 투철하고 대범했다. 신문계의 패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기자 생활을 그만둔 은희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세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았다. 은희는 자유를 찾은 우리나라가 더욱 좋은 세상이 되도록 사회 운동, 여성 인권 운동을 계속했다. 은희는 기자 시절 근우회 소속으로 여성의 사회활동, 교육과 계몽에 힘썼던 것처럼 해방 후에도 여권실천운동자클럽, 서울보건부인회, 대한부인회 등 여성 단체에서 활동했다.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과 교육 수준을 높이고, 보건 및 위생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힘썼지요. 그리고 여러 책을 쓰며 사회에 진출한 여성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갔다. 최은희가 신문사에 재산을 기탁하며 만들어진 최은희 여기자상은 후배 여성 언론인에게 최은희의 기자 정신을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최은희의 삶을 되짚으며 기자라는 직업과 그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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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6-2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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