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으로서의 외(畏)
[책마주보기]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전오영)
독일의 진보적 학생운동 단체의 초청으로 뮌헨 대학에서 이루어진 베버의 강연을 정리한 이 책은 정치를 소명으로 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국가, 정당, 정치가로 나누어 설명한다. 베버의 강연이 있기 전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독일 혁명이 발발하던 시기로 곳곳에서 소요와 파업, 반란이 계속되던 때였다. 그 때문에 베버는 독일의 관료 지배체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국가와 정당, 정치가의 관계적 연합에서 정치를 논하는데, 특히 정치가의 자질을 강조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손에 쥘 권리를 갖게 될 소명을 지닌 정치가는 어떤 종류의 인물인지 고찰한 사회학자, 베버는 대의와 신념, 도덕 등 정치의 윤리 문제가 갖는 독특함과 함께 정치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자질을 제시한다. 대의에 대한 헌신을 뜻하는 열정, 선의를 내세워 변명하지 않고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의 책임감, 그리고 사태를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균형적 현실 감각이 그것이다. 더하여 정치가의 허영심에 내재한 독소를 언급한다. 학자들의 허영심은 개인적 문제에 그치지만 정치가의 허영심은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권력을 향한 야심은 정치가가 일하기 위한 도구로서 권력본능이지만 객관성이 결여한 개인적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정치가라는 직업이 갖는 소명을 망각한 것으로 죄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베버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들어 이상적 정치로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가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는지 물음으로써 이상적 정치와 현실적 정치의 차이를 가늠한다. 현실주의 정치를 옹호하는 베버는 기독교의 산상수훈과 희랍의 다신교, 인도의 베다서를 비교 제시하면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비견하기도 한다. 목적에 의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원칙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목적이 어떤 수단을 정당화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에토스(도덕)적 계율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정치의 윤리적 역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 역설이 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정치가 자신의 책임이므로 잠복해 있는 폭력의 힘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험한 수단을 택했다면 정치가 스스로 부작용의 가능성 또한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가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자신이 어떤 자질을 갖춰야 권력을 제대로 다루고, 정치적 책임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자각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이율배반적 윤리의 강을 건너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베버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제공하려는 뜻에 비해 세상이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의지가 있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진 사람이라며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언급한다.
책을 덮는 지금, 방송에선 채 해병 순직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한창이다. 저들의 ‘확신’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문득 “목민심서”에서 ‘치현결’을 인용해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글자뿐이라는 다산의 글귀가 떠오른다.
전오영 작가는
'리토피아'에 시 '손톱 깎는 밤'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저서로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수필집 '노을공책'이 있으며 현재 교육지원청과 교육문화회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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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6-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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