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전북론]누가 전주를 죽이고 있을까
25, 발전의 역설
전주가 발전한다면
혁신도시처럼 되어야 하는 것인가?
구도심은 더 죽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외지인이 말하는 전주는
구도심 전주를 말한다
그런데 그 전주는 죽고 있다
1. 발전은 강남처럼 되는 것일까
쓸데없이 예민한 것일까? 집안 일로 광명역 부근에서 며칠 머물렀다. 근대성이 가득한 역, 이케아 같은 유명한 해외 대형마트들, 이런저런 업무용 빌딩들, 전주 동문길 같은 골목길은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발전이라 불렀다. 하지만 전주 촌(?)에서 온 나는 문이 닫힌 화생방 훈련장에서 가스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전철, 버스, 택시를 확인하고 대기하고 부른다. 도시 동선은 디지털길의 구현이자, 소비와 유통 동선이고, 고층아파트는 공중수용소로 보였다. 대도시인들은 내 삶의 의지가 아니고 누구인가가 기획한 삶의 포로들로 보였다. 10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깔고 앉아서 호시탐탐 이른바 스카이캐슬로 진입하기 위해 발버둥하는 인생들이 부럽다고 내 삶터 전주의 정치인들은 외치고 있다.
지하도로로 지하주차장에 와서 콘크리트 통로의 승강기를 타고 공중가옥에 도착한다. 마당에서 만나는 사람도 없다. 1990년대 아파트는 지상주차장 마당에서 만난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주고 받았다. 승강기에서는 아는 사람을 만나도 승강기 이동 시간이 만남을 통제한다.
농촌만 소멸하는 게 아니다. 방송극 「 응답하라 1988」의 도시도 소멸하고 있다. 그와 함께 그나마 남아 있던 1970~80년대의 도시 공동체도 해체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전주 동문거리는 편의점만 빼면 여전히 1980년대의 삶의 양식으로 산다.
누구에게는 발전과 성장으로 보인 도시가 내게는 인간과 자연의 멸종으로 보였다. 차가 갈 수는 없지만 인간이 사는 골목길은 광명역 부근에는 없었다. 봄빛 속의 콘크리트철강도시는 가상세계인지 현실인지 종잡을 수 없어서 걸음은 갈팡질팡했다.

전주 구도심 동문길의 하늘, 도시의 황혼과 신생을 생각해 본다.
2. 죽어 가는 전주와 태어나는 전주
「 전주」가 살아 있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부르던 '전주'라는 이름의 그 '전주'는 기운생동하고 있는가? 지금 전주는 우리가 부르는 그 전주일까? 내 생각에 전주의 주류는 혁신도시, 만성동 법조타운, 에코시티, 서부신시가지, 효천신시가지다. 이 공간들은 규모는 다르더라도 광명, 인천 송도, 서울 강남과 다르지 않다. 흔히들 전주 구도심이라고 말하는 곳은 이방인들의 구경거리고, 나이 든 사람들이 과거를 읊조리고 있을 뿐이다. 필자가 사는 경기전길의 중앙초등학교는 폐교를 걱정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신전주 사람들에게는 낡은 유물일지도 모른다. 구전주 사람들은 신전주 사람들을 위해 골목길과 막걸리와 판소리와 북소리를 지키는 유무형문화재인간 아니 구경거리인 것이다.
지역소멸은 무엇일까? 군 단위 농촌만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도청 소재지 전주도 소멸하고 있다. 소멸은 도시권력 이동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해 본다. 도시 내에서도 권력은 이동한다. 땅 면적으로는 전북 완주군 이서면 농지가, 같은 완주군 이서면 혁신도시 아파트 면적의 수 백, 수 천 배는 넘을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 인구가 투표에서는 더 많다. 대의권력은 아파트 인구 친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서면 소재지의 상점도 아파트 친화형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완주군 이서면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다. 이서면 농민들은 권력이 없다.
전주나 새만금이 인천 송도처럼 되는 것은 좋은 일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인천 송도를 잠시 들렀는데 '따라잡기' 전략은 백전백패로 보였다. 전주가 발전한다면 전주 혁신도시처럼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구도심 전주는 더 죽어야 하는 것일까? 발전은 구도심 전주가 더 죽어야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외지인이 말하는 전주는 구도심 전주를 말한다. 그런데 그 전주는 죽고 있다.

당산철교에서 본 서울 여의도에는 회색빛이 가득하다. 도시 발전은 여의도처럼 되는 것일까?
3. 동물원 원숭이를 만드는 도시재생
지역기획(로컬디자인)이니, 도시재생이니 어쩌고 저쩌고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지역활력일 테고 지역활력은 방문객 많고, 자영업 잘 되고 그런 일일 것이다. 그래서 혁신도시, 에코시티 등이 생긴 것이지 않을까? 그 신시가지 전주를 만들어서 구도심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사람들이 지역기획이니, 지역판매(지역 마케팅)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지역인들은 설계 대상 또는 계몽 대상도 아니다.
전주시 전체에는 도움이 분명하나 필자처럼 한옥마을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한옥마을은 번잡하고, 세탁소도, 약국도 의원도 없다. 주말이면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다. 날로 한옥마을 상주인구는 준다. 방문객들의 평점이 한옥마을의 삶을 결정한다. 그러니 한옥마을 사람들은 동물원 원숭이인 것이다.
혁신도시, 법조타운, 에코시티, 효천타운, 서부신시가지를 만들어 놓고 무슨 지역기획을 한다는 것인지? 병 주고 약주는 셈이다. 신시가지 설계자들은 전주의 파괴자들이고, 주변 농촌지역 소멸의 원흉이다.
이론적으로 지역활력 첫째는 온라인 유통이 50%가 넘는 원거리 물품 수입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값싼 중국산 배트남산, 말레이시아산 물품 없이 지역생활이 유지될까?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 지역활력을 할려면 전주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내세워야 한다. 그런데 전주만이 가진 특성을 다 죽이는 신시가지를 만들어놓고 전주의 경쟁력을 말하면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난다. 도시 공간이 전국 어디나 같은 빌딩과 아파트면 거기서 무슨 경쟁력이 나오겠는가?
둘째는 지역소득(GRDP)에서 법인몫과 세금이 1이고, 1인당가처분소득이 1인 경제구조, 1인당 지역소득이 평균 5천만 원이라면 여기서 법인몫과 세금을 빼면 2천5백만 원이다. 이 구조를 어떻게 역전할 것인가를 말하는 지역기획가나 지역 정치인은 없더고 본다.
셋째는 부가가치율인데 약 43%다. 지역총거래량이 100조라면 GRDP 즉 부가가치 총계가 43조라는 뜻이다. 부가가치율 즉 생산효율화를 7% 올리면(산업고도화) 7조의 추가 소득이 생긴다.
이런 밑바닥 경제구조와 공간, 풍경 구조를 혁신하지 않고, 지역활력, 지역마켓팅, 지역기획은 반짝쇼, 먹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열심히 외지인들이 말하는 그 전주를 죽이고 있다.
4. 도시의 해체와 신생
도시는 30년 안팎에서 해체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애도의 시대다. 인간은 기후온난화에 위협을 느끼지만 지구자연은 대개벽을 하고 있다. 멸종하는 게 너무 많다. 우선 농인(농민이 아니다)이 인구의 5%도 채 안 된다. 멸종이라 해도 좋을 수치다. 비인간 생명종들이 연달아 멸종하고 있다. 인간도 지구자연의 한 종인데 멸종 다음에는 새 생성이 있기 마련이다. 뜨거워지면 어떻고 추워지면 어떠랴.
도시은 무한 팽창할까? 도시 발전을 말하는 이들을 보면 초등학교 산수도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도시로 이주할 농촌인구가 없다. 저출산 아니 무출산으로 인구 감소 추이가 2023년부터 시작됐다. 아직은 여력이 있다. 한 10년 수도권은 더 팽창할 것이다. 그 다음은 내리막길이다. 빈자리를 이주노동자가 지금보다 더 급진적으로 채울 것이다. 도시 인구 감소는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부동산이 폭락한다. 여기에 산업변동과 서울 부산을 20분만에 주파하는 하이퍼튜브열차가 20년 안에 상용화된다면 대도시 거주 이유가 없다. 비싼 집값과 거주비용과 열차비용을 비교하게 될 것이다.
저성장 시대에 도시는 일자리로 사람을 끌어들어는 유인동기를 가지기 어렵게 됐다. 도시는 교육, 의료, 권력, 문화 때문에 사람들을 더 유인하겠지만 이를 대체하는 인터넷, 온라인 시장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기후변혁으로 대도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보통 수준을 넘는 홍수, 가뭄, 더위, 추위 그 어느 것에도 도시는 취약하다. 도시가 일자리나 권력으로 보상해주는 매력을 넘는 위험이 일상화된다. 도시에 거주할 매력이 사라진다.
지역 소멸 대책은 필요없다. 지금 사회경제체제에서 성공하는 지역은 불가능하다. 지역론은 탈근대적 성장을 찾아야 한다. 근대도시를 역사의 수장고에 넣어야 한다. 역사의 매 시기마다 도시는 권력체였다. 지역론은 탈도시론이어야 한다. 탈도시론이 농촌으로 가자는 말은 아니다. 촌과 도시가 분별되지 않는 지역이 만들어진다면 그건 도시가 아닌 다른 무엇이다. 나는 그것을 농시라 이름했다. 농과 도의 분리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비극이다./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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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5-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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