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5월 23일 13시48분
[금요수필]5월의 봄
윤재석
5월의 봄날에 무변대야(無邊大野)의 풍경이 새롭다. 겨우내 바닥을 보이던 시내에 물이 흐른다. 어제 내린 봄비에 시냇물이 불어나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풀렸나 보다. 솔개는 무엇을 찾는지 소리 없이 창공을 배회하고 있다. 버드나무 실실이 푸르면 꾀꼬리가 찾아와 봄을 노래할 것이니 모두가 자연의 이치에서 때맞춰 오고 가는 질서가 아니겠는가.
일찍 꽃 피우던 매화 가지에 방울이 맺혔다. 추위를 마다하고 일찍 봄을 알리는 까닭으로 봄의 전령사라 부른다. 예부터 선비들은 추운 날씨에도 꽃을 피우면서 매화의 향을 잃지 않는다고 하여 군자라 부른다.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도 그를 일러 매군, 매형이라 불렀다 한다. 매실이 토실토실 열렸다. 파란 잎과 어울려 봄날을 즐기고 있다.
울안 텃밭에 감자꽃이 피었다. 5월 봄날이 주는 선물이다. 부지런한 농부의 손에 따라 정성껏 심어놓은 감자의 꽃이다. 두둑한 밭두렁 속에 씨앗 감자가 굵어지고 있다는 징표다. 조금 있으면 농부의 주먹보다 큰 감자를 수확할 것이니 생각할수록 즐거운 일이다. 어릴 적에 먹던 감자 맛은 천하의 일미였는데 지금은 그때의 맛이 아닌 듯하다. 기근에 시달리던 때와 풍요가 넘치는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배가 출출하면 생각나는 감자였다. 생각하면 그저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뒷동산에는 찔레꽃이 지천이다. 하얀빛으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향이 진하여 콧속을 뚫고 들어온다. 나비와 벌들이 종종 찾아와 꿀을 따 가고 있다. 이들도 때를 놓칠까 보아 열심이다. 어릴 때 동무들과 어울려 동산에 올라 찔레꽃을 따고 찔레 순을 꺾어 나누어 먹던 추억이 새롭다. 찔레순을 나누는 방법은 가위, 바위, 보로 승부에서 이긴 사람이 맨 먼저 좋은 찔레순을 가진다. 순번이 돌아갈 때마다 이 방법을 거듭했었다. 이제 그 동무를 만날 수가 없으니, 누구와 더불어 옛날을 회상하며 즐길 것인가. 길가에 피어난 잡초도 5월의 봄날을 맞아 푸르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건만, 관심 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꽃이 작다고 꽃이 아니며, 길가에 있다고 생명이 아니랴. ‘하늘은 복록이 없는 사람을 낳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길가 잡초라고 이름이 없겠는가. 무지로 모를 뿐이다.
풍요를 준비하는 계절이다. 봄은 한 해 농사를 위해 농부의 일손이 바쁘다. 농사는 제때를 맞추어야 한다. 때를 잃으면 가을에 추수할 희망이 없다. 사람도 학문에 정진할 때를 놓치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경구(警句)가 있지 않던가. 부지런한 농부는 새벽이 더디 옴을 탓하고 서산에 지는 해가 아쉽기만 하다. 바람에 구름이 흘러간다. 주유천하의 길을 나서는가 보다.
윤재석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은빛수필문학회 회장,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부회장 전북문인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상: 대한문학 작가상, 완산벌문학상, 은빛수필문학상, 진안예술상.
저서: 삶은 기다림인가. 진안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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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5-2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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