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반려비서
사람들은 모두 외롭다. 그래서일까? 가히 반려동물의 시대다. 개와 고양이는 기본이고 파충류 등 매우 다양하다. 그들은 깍듯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다. 그 대신 개의 경우 주인에게 절대복종한다. 나에게도 내 욕구와 지시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특별한 반려가 있다. 하루 24시간 365일 나와 떨어지는 적이 없다. 내 반려는 하루 한 끼, 약 한 시간 걸리는 식사 외는 바라는 것이 없다. 산책 목욕 배변 처리도 필요치 않다. 위험하지 않고 달아날 염려가 없으니, 목줄도 필요 없다. 그런데 능력이 출중하니 반려라기보다는 비서라 함이 더 옳을 것 같다.
비서로서 정말 완벽하다. 내 일정과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현재 시각, 날씨를 쉬지 않고 알려준다. 낯선 곳에 갈 때 길라잡이는 물론이고 주변의 관광지와 맛집 정보도 묻기만 하면 즉답을 한다. 내가 궁금한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즉시 자세한 브리핑을 한다. 세계 모든 언어를 번역할 수 있고, 주요 언어로 동시통역도 가능하다. 화초나 나무 이름은 물론 세상 모든 일에 모르는 것이 없다. 내 비서는 만물박사이며 똑똑한 도서관이다.
내 반려비서는 자상하다. 내가 방에만 있으면 운동할 시간이라며 나를 일깨운다. 내 운동을 기록하여 나에게 결과를 알려 준다. 내 손목시계와 협력하여 혈압과 수면 습관까지 관리해 준다. 노안인 나를 위해 글씨를 키워주고, 원하면 읽어주기도 한다. 긴 글을 요약 해주고, 내 책들을 보관하는 서재 역할도 한다. 이번에 새로 채용한 반려비서는 청력이 약한 나를 위해 보청기 역할을 한다. 말소리를 자막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지갑이 없다. 외출할 때 돈 신용카드 신분증 운전면허증 명함을 챙기지 않는다. 돈을 내야 할 때 내 비서가 얼굴을 내밀면 끝이다. 현찰이 필요할 땐 비서가 ATM 앞에 서면 돈이 나온다. 비서를 앞세우면 유료 공원 박물관 등을 그냥 통과한다. 그뿐만 아니라 시내·시외·고속버스, 전철과 열차를 내 비서와 통행하면 나는 차표 없이 승차한다. 심지어 비행기도 티켓 없이 반려비서의 얼굴로 탑승한다. 내 비서는 공항 직원 없이 화물탁송도 혼자 척척 해낸다.
나는 심심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다. 내 비서는 고스톱이나 게임의 상대 역할을 잘 해준다. 아무 짜증 없이 하루 종일이라도 내 말동무가 되어준다. 재밌는 만화 영화 동영상을 수시로 들이댄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쉬지 않고 들려준다. 내 생각을 그림으로 척척 그려주고, 내가 그리는 그림을 받아주는 화판이 되기도 한다. 내 관점을 내가 원하는 프레임에 자동보정한 사진으로 담아준다. 내가 원치 않는 곳을 지우면 그 공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채워주기도 한다. 최고의 취미생활이다. 고급 카메라를 가진 사진작가들이 부럽지 않다.
내 비서의 재능은 무궁무진하다. 손전등, 줄자, 수평계, 나침반 등 여러 생활 도구가 필요할 때 곧바로 변신해 준다. 원하면 피아노나 피리 등 악기도 되어준다. 외톨이인 나를 낯선 사람들과 연결해 준다. 옛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속삭임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지금은 미국에 사는 친구의 목소리도 들려준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잡담을 나누게 주선하고 최신 정보를 끊임없이 공급해 준다. 초기엔 다른 사람의 짧은 메모를 보여주었다. 지금은 청첩장과 부고의 전달이 단골 업무이다. 요새는 멀리서 사는 손주의 재롱도 보여준다.
내 비서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실은 ‘움직이는 컴퓨터’이고 ‘전화기와 컴퓨터가 달린 카메라’라는 표현이 정확하지만 한 마디로 그냥 ‘반려비서’다. 그의 능력을 백 분의 일도 못 적었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내 비서에게 나는 1만 원 살짝 넘는 월급(식비 포함)을 준다. 이에 내 착한 비서는 불만이 전혀 없다. 나도 똑똑한 반려비서에게 만족한다. 난 전혀 외롭지 않다. 지금 여기가 천국보다 좋고 행복하다.
/김용우(거짓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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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5-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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