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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주용
- 2024년 05월 20일 15시28분

[인문학 속 클래식]…취미 속 클래식 vol.3

3. 취미 속에 피어난 진정한 예술
“즐거운 인생이란, 먹고 사랑하고 노래하며 소화하는 것!”-로시니(G.Ross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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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마추어 피아노 콩쿨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그간 온라인 영상을 통해 아마추어 고수들의 뛰어난 실력을 접해온 터라 콩쿨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상당히 컸다. 직접 접한 참가자들의 연주는 상상 이상이었는데, 아마추어라는 걸 잊게 만드는 참가자들의 뛰어난 실력과 프로 연주가 못지 않은 집중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 이 무대를 위해 짜투리 시간을 내어 연습에 쏟았을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니 절로 겸허해졌다. 그간 일류 공연장에서 느낀 세계 최고 연주자들의 연주에서와는 또 다른 감동과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뛰어난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예는 역사 속 위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과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그들이다.

아인슈타인은 13살에 이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는데 훗날 세계를 누비며 강의와 연구를 하는 바쁜 여정에도 바이올린은 꼭 지참했다고 한다. 또한 전문 음악인들과도 자주 연주하였으며 ‘나는 음악을 통해 생각한다’라고 자주 이야기 했다고 전해질 만큼 음악은 그에게 삶의 일부였다.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해 깊이 연구했는데 여기서 상대성 이론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에 큰 공헌을 했으며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삶을 헌신해 아프리카 밀림에서 봉사했던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명한 철학자, 신학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평생에 걸쳐 바흐를 연구하고 연주했으며 파이프 오르간 악기 연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예로 ‘오르간 제작법과 오르간 음악’, ‘바흐 연구’와 같은 권위있는 논문과 책을 집필했으며 세계 곳곳에서 오르간 연주회를 개최했다. 특히 바흐 음악에 대한 그의 주석은 후대 음악도들에게 교과서처럼 여겨지고 있다. 슈바이처는 강연과 연주회, 음반 발매에서 얻은 수익으로 아프리카 의료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으며 그의 이러한 인류애와 헌신은 많은 존경을 받았고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아인슈타인과 슈바이처가 음악의 세계를 끊임없이 동경한 인물들이었다면 반대로 음악계에서 저편의 세계를 열망한 음악가들이 있다. 드보르작과 로시니가 그들이다.

‘신세계 교향곡’으로 유명한 체코의 국민 작곡가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1841-1904)은 기차 매니아였다. 그는 어릴 적 증기기관차에 매료되어 매일 같이 터널 위에 올라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관찰했으며, 운행하던 거의 모든 열차의 차종과 제원, 노선도, 시간표 등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 훗날 음악원의 교수로 수업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차를 보러 가야하니 오늘은 휴강해야겠어”라고 말하며 성급히 기차역으로 뛰어갔다는 일화는 유명하고 어느 날 저 멀리 들리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영 이상해 ‘기적소리가 이상하니 한번 점검을 해보라’고 철도청에 연락을 해 그 기차의 중대한 결함을 발견하고 사고를 예방한 일화도 있다.

드보르작의 기차 사랑은 자연스레 그의 음악에도 묻어나는데 그 대표적인 곡이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이다. ‘신세계 교향곡’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곡의 4악장 도입부 첫 소절은 저 멀리 육중한 증기기관차가 엄청난 양의 하얀 증기를 하늘로 뿜어내며 성큼성큼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웅장하면서도 진취적인 음향이 기차의 힘과 스피드를 참으로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드보르작 외에도 기차에 매료되었던 후대 작곡가로 프랑스 작곡가 아루트루 오네거(Arthur Honegger, 1881-1955)와 영국의 작곡가 마이클 나이먼(Michael Nyman, 1944-)이 있다. 드보르작 못지않은 기차 매니아였던 두 사람은 기차가 가진 힘과 현대성에 영감을 받은 곡들을 발표하였는데 오네거는 1923년, '퍼시픽 231(Pacific 231)'을, 나이먼은 1993년, ‘MGV’을 발표하였다. 특히 나이먼의 곡은 프랑스의 고속열차 ‘TGV(떼제베)’의 개통을 기념해 만든 것인데 흥미롭게도 위 세 작곡가의 곡들을 차례로 들어보면 현대문명의 발전상이 음악에서도 느껴진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대표적 오페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가히 전문적이라 그가 개발한 메뉴는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고 그의 이름을 붙인 요리 경연대회도 있다. 지금이라면 분명 ‘미슐랭가이드’의 선정위원으로 활약하지 않았을까.

로시니는 24세에 대표작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를 발표하며 큰 성공을 거두어 젊은 나이에 유럽전역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그 명성은 음악의 중심 도시 비엔나까지 널리 알려져 당시 최고의 음악가 베토벤에 버금갔다고 한다. 이처럼 이른 나이에 성공해 그 어떤 음악가보다 부와 명예를 누리던 로시니는 오페라 ‘윌리엄 텔(Guillaume Tell)’이후 단 한편의 오페라도 작곡하지 않으며 갑작스레 작곡을 중단한다. 물밀듯 작품 요청이 쇄도하고 막대한 작곡료도 보장되었지만 모든 제안을 거절하며 홀연히 음악계에서 은퇴하고 요리 연구에 매진한다. 그의 갑작스런 은퇴를 두고 사람들의 추측이 난무했는데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로시니가 너무나도 사랑하던 트러플(Truffle), 즉 ‘송로버섯을 찾을 돼지를 사육하기 위함’이다. ‘땅 속의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트러플은 작은 원형의 버섯으로 땅속에서 자라는데, 흙 속에 묻혀 있어 맨눈으로는 찾기가 어렵고 돼지나 개와 같은 후각이 발달한 동물을 이용하며 채취한다. 로시니는 자신의 요리에 재료로 쓸 트러플을 맘껏 채취하고자 이를 위한 돼지를 사육하고 훈련시키고자 작곡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로시니의 트러플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현재까지 내려오는 요리 용어 중 하나인 ‘alla Rossini(로시니처럼)’이라는 말은 ‘로시니식의 트러플 소스’를 뜻하며 현재까지 크게 사랑받고 있는 로시니의 개발 메뉴, ‘투르느도 로시니(Tounedos Rossini, 푸아그라와 트러플을 곁들인 소 안심 스테이크)’ 또한 송로버섯이 주 재료로 쓰인다.

로시니가 남긴 유명한 말 중에 "즐거운 인생이란 먹고(mangiare) 사랑하고(amare) 노래하며(cantare) 소화하는 것(digerire)!"이란 말이 있는데 우리의 짧은 인생동안 잘 통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나는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그 이상으로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아마추어 콩쿨에서 만났던 음악가들, 그들은 긴장되고 낯선 환경에서도 애써 집중하고 몰입하며 음악 자체를 진정으로 즐기는 듯 했다. 그 날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했을 세세한 많은 것들이 숱한 연습과 더해져 무대 위 예술로 꽃피워졌다. 어떤 대상에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끼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인가. 그 날 무대 위 상기된 얼굴 속에 언뜻 보이는 그들의 땀과 아름다운 미소는 앞으로도 내내 기억될 것이다.

/이주용 전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6월 8일 (토) 15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초대] “슈테른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해설 이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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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5-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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