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5월 19일 14시25분
[월요아침]귤화위지(橘花爲枳)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되듯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바뀐다”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로 서울 대치동은 서울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알려진 대입 학원가로 유명하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시험과 편입 준비생들로 북적인다. 노량진과 신림동은 공무원시험과 고시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공부한 수험생들의 합격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전국에서 수험생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의 지배를 받는 식물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닥에 깔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쑥도 삼밭에서 삼과 함께 자라면 삼 따라서 곧고 길게 자란다. 거기에서 생긴 고사가 ‘마중봉생(麻中蓬生)’이다.
탱자에 얽힌 고사성어로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한자는 귤나무 귤(橘), 될 화(化), 위할 위(爲), 탱자 지(枳) 자를 쓴다. 풀이하자면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인 안영(晏嬰)이 제나라를 업신여기고 자신의 작은 키를 조롱하는 초나라 왕에게 기죽지 않고 대답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해, 초나라의 영왕이 안영을 초청했다. 초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하필 경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작은 키를 비웃으며 업신여겼다. 이에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저의 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은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 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알기로는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聞之 橘生淮南則爲橘生于淮北爲枳).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 其實味不同).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안영의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화가 끓어올랐다. 마침 그 앞으로 죄인을 다루는 포리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이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밝힌 다음에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하자. 안영은 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에 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성인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처럼 안영이 ‘귤화위지’라는 말로 강대국이었던 초나라 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안영은 제나라의 가장 탁월했던 재상으로 정치․외교적인 능력은 물론 재치 있는 언변도 갖추었다. 또한 학식이 깊은 학자로서 삶의 지혜와 통찰도 깊은 인물이었다.
고사성어 ‘귤화위지’의 결론으로 안영은 습속이성(習俗移性), 즉 습관과 풍속이 사람의 본성을 바꾼다고 말했다. 안영의 가르침은 우리와 후손들에게 좋은 환경과 훌륭한 풍속을 만들어 물려 주어야 할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태현(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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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5-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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