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5월 13일 08시02분
부활하고 싶은 당신에게
[책마주보기]톨스토이의 '부활'(하채현)
“네흘류도프는 타오르는 램프 불빛을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우리 주변 생활의 추악함을 떠올리고 만일 인간이 이런 계율 속에서 지낸다면 우리네 생활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러자 새로운 환희가 그의 마음속에 용솟음쳐 올랐다. 마치 오랫동안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해방되어 갑자기 평안함과 안정을 얻은 듯했다.” (3부, 2권, 326쪽, 대단원 부분)
네흘류도프의 도움으로 드디어 카튜샤에게 특사가 내려졌다. 출옥이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카튜샤는 네흘류도프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말했는데 네흘류도프는 그런 카튜샤의 결정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내린 것이라고 믿었다. 네흘류도프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교도소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교도소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 이처럼 3부작 톨스토이의 '부활'은 인류애로 읽힌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인류애의 실천은 ‘용서’라는 열쇳말에 의해 작동하는 듯하다. 톨스토이의 분신 네흘류도프의 ‘평안’은 용서를 익힌 자의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세계문학전집으로 '부활'을 읽었다. 이번에 다시 읽은 '부활'은 인디북에서 2000년에 박형규 선생님의 번역으로 출간된 책이다. 4.10 총선을 앞두고 어수선한 심정을 가라앉힐 작정으로 집어 들었는데 제격이었다. 햇살이 비치는 뒷마당에서 나무 그늘 캠핑 의자에 앉아 읽었다. 690페이지 분량 '부활'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지만 역시 '부활'은 ‘용서’의 의미를 가장 깊게, 가장 쉽게 알려주는 교양소설의 면모가 다분하다. 아마도 인류애, 용서, 교양이 담긴 '부활'은 성큼 다가오는 더운 계절에 서늘한 그늘에 앉아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부활’은 사실일까? 상상일까? 정말 네흘류도프는 부활했나? 아니면 카튜샤가? 우선 상상에 대해서 보면, 거인처럼 무거운 것을 번쩍 들 수 없을까? 상상해서 지렛대를 만들고, 재규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을까? 상상해서 바퀴를 만들었다. 새처럼 날 수 없을까? 비행기를 만들고,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AI까지 만들었다. 지구 밖을 도는 일렉트론, 우주 탐사 인공위성, 다른 차원과 다른 시간 심리학까지, 인간이 상상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알 수 없으며, 미래 세대에게 더욱 필요한 핵심 역량이 ‘상상력’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부활'은 실제 즉 사실. 우리는 인류사에 부활한 단 한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부활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빛이 하얗게 부시는 가운데 끝도 없는 꽃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저승사자의 급보를 받고 다시 이승으로 내려오는 경우다. 심폐소생술로 인한 일이다. 심폐소생술은 예비교사의 교직소양 교과목이며 보건계열 필수 자격 영역이다. 부활이 실제인 증거다. ‘부활’이 사실이건 상상이건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톨스토이의 분신(分身)인 네흘류도프와 카튜샤는 부활한다. 어떻게? 서로를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고 삶에서 용서하는 법을 배워서 두 사람은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읽다 보면 나도 ‘부활할 수 있겠어’라고 믿게 된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나는 한 정치인의 서재에서 이 책을 빌렸다. 그 서재에는 톨스토이 전집이 주르륵 꽂혀 있었다. 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연대하는 모든 과정이, 톨스토이의 책에 들어있기 때문일까? 바로 오늘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감사하며 정말로 부활하고 싶은 당신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당신이 톨스토이를 읽을 때다.
하채현 작가는
출판그룹상상 기획위원
우석대 국어교육과교수
군산대 인문도시센터연구원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4-05-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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