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5월 02일 14시45분
[전북의 창]진묵대사와 김제
진묵대사는 ‘마음먹기와 실천’을 함께 중요시했던 인물
유명한 일화로서 굴을 달리 부르는 ‘석화’나 술을 달리 부르는 ‘곡차’라는 어원이 모두 진묵대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보통의 스님과는 다른 행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삼고 산을 베개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삼아
크게 취하여 흔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되노라』
진묵대사가 남겼다고 알려진 이와 같은 시를 살펴보아도 이런저런 격식과 규제를 뛰어넘어 마치 자연과 내가 한 몸이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마저 느껴진다.
그는 이렇게 불도의 실천적 사상의 법도를 정신세계에서 찾았던 기존 불교 세계와는 달리 불교사상을 행동화함으로써 그의 불교입신에 새로운 경리를 보였다.
이러한 진묵대사는 조선 명종 17년(1562년)김제 만경의 불거촌에서 태어나 7세에 전주에 있는 봉서사에서 출가해 선공부를 하고 득도한 인물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석가의 소화신’으로 일컬어지면서도 술을 잘마시고, 신통력으로도 많은 이적을 행한 인물 진묵대사의 흔적은 그의 출생지인 김제 만경 곳곳에 남아있다.
진묵대사의 삶과 가르침은 주로 설화의 형식으로 전해지지만, 적어도 이러한 설화를 바탕으로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며 민중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예를들어 해인사 대 화재를 도술로 진화시켰다거나, 모악산 대원사 마당에 목조로 사자 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400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그가 민중들에게 단순한 승려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진묵대사를 모시는 만경 화포리의 조앙사가 있으며, 조앙사 바로 옆에는 “자손이 없어도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천년동안 이어지는 명당”으로 알려진 곳에 대사의 어머니 묘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성모암이다. 특이한 점은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와 그 묘를 돌보기위해 지어진 고시례전이 있는데 사실 고시례라는 것은 음식을 먹기 전에 자리 밖으로 음식을 던지며 지신이나 수신에게 인사를 드리는 행위로, 잡귀추방의 주술적 의미도 포함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내려오는 구전에 따르면 진묵대사가 만경 뜰을 다니며 일하는 농부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때마다 음식을 조금 떼어내 어머니를 위해 들판에 던졌는데, 이때부터 농부들도 진묵대사 고씨성을 가진 어머니를 일컫는 ‘조의씨’부르며 음식을 나눴다고 한다. 이렇게 ‘조의씨에게 예’를 올린다는 말이 지금의 ‘고시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그는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함에 있어서도 “절이란 어디까지나 중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도를 닦는 중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파하며 절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모정이나 길거리를 찾아다니며 법도를 전파하였다.
이렇게 계율과 형식적 틀에 얽메이는 것을 싫어했던 진묵대사의 성향은 술을 마시며 “세속인은 취하기위해 마시니 술이겠지만 나는 그것을 마시면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지니 곡차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망해사 바닷가 바위에 붙어있는 굴을 따먹으며 “이것은 굴이 아니라 바위에 피어난 꽃(石花)이다”라고 말한 것으로도 대변할 수 있다.
이는 진묵대사는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어떠한 마음으로 먹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 것이며, 원효대사의 ‘해골 속의 물을 통한 깨달음’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다만 원효대사와의 큰 차이는 진묵대사는 이러한 깨달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곡차’와 ‘굴’의 이야기처럼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진묵대사를 한국 불교사에서 드물게 실천적 실존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도 김제 망해사에는 진묵대사가 지었다는 망해사 낙서전과 대사가 심었다는 두 그루의 팽나무가 새만금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 천국과 지옥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묵대사의 실천적 깨달음도 이곳에 함께 자리잡고 있다. /백덕규(김제시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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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5-0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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