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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4월 24일 15시30분

급격한 산업화 이후 우리들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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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눈썹 속 제비집’(지은이 안영, 펴낸 곳 리토피아)은 작가의 두 번째 시집으로 급격한 산업화 이후 우리들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시편들로 넘쳐난다.

‘젖은 흙과/ 마른 풀잎 몰고 왔다/ 바람을 막아 집을 짓는다// 처마 밑 성근 둥지에/ 나와 눈이 마주친// 한 마리 제비를 위해/ 창문 열지 않으리/ 불 켜지 않으리// 고단했을 하루 편히 쉬도록/ 이름도 부르지 않으리// 모든 것이 가뿐해질 내일 아침/ 힘찬 날갯짓에/ 하늘 높이 날아오르리// 제비 한 마리/ 내 속눈썹 속에 집을 짓는다(‘제비를 위한 밤’ 전문)’

정든 고향, 빛나던 세월과 시대, 그리운 사람을 떠나온 우리는 디아스포라다. 약자로서의 삶이 필연인 현실은 늘 녹록지 않다. 약자는 항상 핍박받고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스트레스가 쌓이는 나날을 헤치며 살아간다. 더 나아가 간극을 줄여야 한다.

시인이 접한 다양한 예술 장르와 그 개별 작품은 서로 다른 예술적 완성도와 미적 성취를 자아낸다. 따라서 이것들과 조우하는 그의 시적 상상력은 그만큼 독특한 시적 개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시적 진실 면에서도 다양한 층위를 나타낸다. 예민한 감수성과 탁월한 테크닉으로서의 감정이입과 공감각 면에서 수월성을 만나게 된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외부의 사물 위에 옮겨 놓고 마치 그 사물도 인간과 동일한 감정이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공감각의 기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성공을 거두고 있다.

‘너에게 간다/ 시리던 별빛 이미 여위고/ 눈썹달 빠진 저 바다에/ 몸 부푼 파도 달려오겠다// 밤안개 속 길을 열던/ 등불 심지 돋우고/ 어둠을 내모는 동해의 새벽// 나보다 먼저/ 가슴이 달려간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내 기다림이 밝아 오고 있다/ 그대에게 당도하기 전/ 이미 빛난다// 발소리도 깨우지 않은 채/ 천 리 먼 길 간다(‘새벽길’ 전문)’

시인은 합리적인 아폴론적 질서를 넘어서 어떤 근원적인 인생의 흐름을 포착해 내고 합리화하고 그리움을 형상화해 나가는 심미적 사유를 역동적으로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런 점들을 눈여겨볼 때 시인의 시는 다양한 생명 존중의 공존 원리를 모색해 가는 동시에 우리가 살면서 자꾸 잊혀져 가는 근원적인 사랑과 그리움을 찾아가는 원천적인 상상과 심미적 사유를 해나가고 있다. 그렇게 시인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궁극적인 긍정의 에너지를 탐구하면서 시간의 연속체로서의 삶을 응시해 가고 있다.

시인의 시는 자신의 직접적 경험 세계를 통해 타인의 비루한 이면을 비추어 볼 줄 아는 역상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해 내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시인의 시를 통해 구체적 시공간에서 빚어진 삶의 다양한 양상들을 실감 있게 경험해 가면서 고통과 어떤 어둑한 힘에 의해 밀려난 경험적 실재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그만큼 시인의 시는 사물의 서정성과 구체성이 결합되어 희망적인 삶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형상적으로 암시해 주는 이러한 풍경이 오로지 시적으로만 재구성되는 인위적 행위가 아님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그 시들이 실재와 대립하는 비실재를 결합시키고, 실재와 환영을 겹쳐놓는 균형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가게 된다.

안성덕 시인은 “급격한 산업화 시대를 건너 광속으로 변하는 세상의 멀미를 하소연하고 견딜 수 없는 그 멀미에 절규한다”면서 “산업화시대·정보화시대·인공지능시대의 디어스포라를 위한 시집이다”고 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은 때때로 얼굴 붉어지고 새삼 더욱 고개 숙여지는 부끄러움 속에서 다시금 꽃 피우고 싶은 열망으로 점철된다”며 “겨울비로 봄비로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싶어 두 번째 시집을 냈다”고 밝혔다.

시인은 김제 출신으로 1997년 ‘문예사조’에 수필, 2011년 '한국문학예술>'에 시로 등단했다. 전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과 가톨릭 전북문우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집 ‘내 안에 숨겨진 바다’와 시집 ‘시간을 줍다’가 있다. 전북예총 하림예술상 공로상, 전북수필문학상, 전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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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4-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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