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4월 21일 15시22분
[신생전북론]`자유·평등'보다 `신나다'가 훨씬 좋다
21. 신나다와 신을 낳다우리는 권력의 창에 찔리고
검은 옷 입고 일하는
민(民)이 아니고 사람(人)이다
자연과 인간이 신나는 세상,
신을 낳는 세상이
진보 대 보수를 돌파하길
나랏사람들은 마음에 꽉 와닿는 일이 벌어지면 "신난다"고 한다.
내가 사는 전북이 신나는 전북이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돈을 많이 버는 일만큼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리저리 돌려 말해도 전주의 주류 정치인들은 돈 많이 버는 전북이 최대최고의 목표다. 개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돈 싫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돈 많이 버는 일로 모두가 신날 수 없고, 도리어 자본주의는 누구인가의 가난이 있어야 만이 돈을 벌 수 있는 체제다. 이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불평등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가 없다.
가난해서 신용도가 낮아 이자를 부자들보다 더 많이 낸다. 이른바 가난세다. 장학금은 공부하기 어려운 형편의 학생에게 줘야 하는데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 준다. 장학금은 능력주의와 가난세가 결합된 형태다.
자본주의에서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 일로 고통을 더 받지, 신나는 일은 드물다. 도리어 신나는 일은 개개인의 작고 큰 일이다. 시험 합격, 사랑의 시작 예쁜 아이의 출산, 승진, 집 장만, 벗들과의 어울림 이런 일은 신나는 일이다.
신난다는 무슨 말일까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이 신난다는 서구적 개념인 자유, 평등보다도 훨씬 좋다는 것일까?
본디 자유, 평등은 서구에서 신생자본가들이 귀족에 대항해 시장의 자유와 이를 정치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귀족과의 평등을 주장한 개념이다.
2. 자유•평등을 돌파하는 신나다
이 자유와 평등은 자본뿐 아니라 몸일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에게 까지 적용되는 진보를 이루고 있는가? 아니다. 가난한 자의 자유와 평등은 억압당하고 있을 뿐이다. 서구에서 말하는 진보는 본디 기독교 토양에서 잉태된 것이다. 하나님 왕국으로 일직선 여행! 공산주의 사상 역시 기독교의 목을 베지 못했다. 자유와 평등은 서구의 개념을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이다. 평등은 화엄경서 빌려 왔다. 내가 보수라 할 때 본디 모든 이와 것들에 속한 자유와 평등을 지킨다는 뜻이다. 자본은 시장의 자유를 지키려 하지만, 나는 시장에 억압당하지 않을 자유, 소유의 자유에 내 노동의 자유가 침탈당하지 않기 위해 지키려 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은 이 세계가 만들어질 때부터 있는 것이나, 억압당할 뿐이고, 진보나 보수하는 게 아니다.
근대체제에서 진보 대 보수라는 구도 자체가 기만적인 것이다. 진보를 말하는 이들이 어떤 뜻으로 쓰는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때가 많다. 노동해방을 말하는데 노동해방이 자본으로부터 해방이라면, 그 해방은 어떤 상태인지를 들어본 적도 없다. 국유화! 당과 국가와 관료가 지배한다. 해방이 아니다. 형틀로 주조한 붕어빵 프롤레타리아가 해방은 아니다. 소련의 대약진운동, 중국의 문화대혁명, 북한의 천리마운동, 한국의 새마을운동 모두 노동자들의 고혈을 뽑았을 뿐이다.
노동에 진보, 보수가 구분되는가? 그저 노동할 뿐이다. 내가 알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하필이면 번역이 생산(生産)의 산(産)인가? 체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비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찾으려 하나 깜깜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서구적 자유, 평등보다는 '무등'이 낫고, 신나는 세상이 훨씬 좋다.
필자가 일하는 제주도 건축 현장의 유채꽃이 4•3의 기억 속에 피어 있다. 차별과 억압 없는 '신남'을 보는 '봄'이 누구에게나 활짝 피기를 심고한다.
3. '신나다'는 '신을 낳다'다
신나다는 헤겔의 절대정신이 넘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사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날마다 신을 낳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죽을 맛이다'는 신나지 않는 억지춘향 사태다. '신남'을 죽이는 것이다.
니이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포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신, 귀신, 구신은 다양한 얼굴로(스피노자에 따르면 실체가 양태로 드러남) 늘 우리와 함께 살고, 나고, 죽는다. 니이체의 신은 죽었다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의 '신나다'를 따라 올 수 없다.
철학•사상? 별거 아니다.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철학•사상하고 산다.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의 사유를 가져다 쓰니 어렵다. 예를 들면 이렇다.
• 기철학 - 기막히다. 기똥차다. 기운 좀 받자. 기운 차리자. 힘(기)내자. 숨쉬다. 숨통 좀 터치자. 숨은 곧 기다.
• 신학 - 신난다. 신통방통하다. 신명난다. 신기하다. 민심이 천심이다.
웅녀는 신인 환웅의 피를 받아 왕검을 낳았으니 신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신나다'는 '신을 낳다'라고 풀을 수 있다.
이 사유의 맥을 이어 다시개벽한 것이 수운 동학의 시천주, 인내천, 오심즉여심이다. 우리말 '신나다'는 곧 신의 마음이다. 헤겔의 절대정신 따위는 넘볼 수 없는 경지다.
자유, 평등 아니다. 우리 생각은 "신나다 = 신을 낳다"다
'신나다'라고 했더니 이를 광주의 양진호는 '신을 낳다'라고 풀었다. 무릎을 탁 쳤다. 동학은 신을 낳는 신나다고 생각해 봤다
'신나다'가 자유, 평등보다도 훨씬 좋다.
'신나다'가 환웅과 단군왕검이요, 샤먼이요, 동학이다. 신나다가 동학의 오심즉여심이요, 인내천이요, 시천주다.
동학의 알기 시천주가 어디서 와겠는가? 웅녀가 천손 환웅의 피를 받았으니 어찌 시천주가 아니겠는가.
천손 이야기는 세계 토착부족이야 어디든 있겠지만 천의 성격이 다를 것이다. 고대 어느 날엔가 하늘과 끊어진 '절지천통'을 다시개벽하여 이은 '재지천통'이 동학이다.
단군이야기에 따르면 천은 성통공완 재세이화 홍익인(물)간이다. 환웅의 천을 받아 단군 왕검을 낳은 사태가 신을 낳는 신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웅녀의 잉태는 수운이 말한 천을 모신 시천-주다. 웅녀로부터 일파만파한 하늘겨레 한겨레는 시천주겨레다.
천은 어렵고 현란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 신나는 사태다. 존재자의 기쁨이라 할 수 있는데, 스피노자는 이를 '코나투스'라 불렀다. 동학주문 시천주 조화정이란 '신나다', '신명나다', '신을 낳다', '신을 낳는 사건', 신나는 사건의 파동으로 존재자가 생성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건에 따라 존재자의 희로애락이 달라진다. 이런 뜻에서 사건의 생성이 존재를 동학의 우형(又形) 즉 다른 세계로 이끈다. 그래서 사건이 주체지 존재자가 주체인 것은 아니다.
고립적인 단독자 홀로 생성되는 사건은 없다. 사건은 마주쳐야 일어난다. 홀로 갈등하고 기뻐하는 일도 이미 내 안에 깃든 타자와 사건의 흔적으로 생성된다. 수운은 이를 형상은 없으나 자취는 있는 '무형유적"이라 했다. 성리학에는 주문접신강령이 없는데 동학에는 주문접신강령이 있다. 이는 샤먼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동학의 미래는 오래된 약속인 "신을 낳는 신나는 세상의 실현"이다. 서구의 자유, 평등이 아니다. 자유가 아니고 자연(自然)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 아니다. 숲과 강이라는 자연도 아니다. 뭇생명들의 숨과 숨이 결과 결이 마주쳐 아귀가 잘 맞을 때 나랏사람들은 '자연스럽다'라고 한다. '신통방통하다'라고들 한다. '기똥차다', '신난다', '신기하다' 나랏사람들은 늘 신을 낳는다. 가히 시천주겨레다. 신을 늘 잉태해 있으니 신을 낳는 '신난다'이지 않겠는가? 평등 또한 이 신난다에 포함된다. 차별받고, 억압당하고, 수탈당하는데 화나지 신나겠는가?
평등은 불도에서 온 말이지만 그 내용은 서구 것이다. 평등은 사회주의를 포함한 근대체제에서 불가능하다. 평등이 아니고 신나는 세상이다.
우리는 신을 낳는 겨레다. 신난다의 신은 한자어가 아니고 우리 고유어다.
박홍규 작, 한지에 채색화, 활짝 핀 홍매화처럼 신나는 세상이면 좋겠다.
4. 민중이 아니라 신을 낳는 사람이다
나는 민중이 아니라 신나는, 신을 낳는 신인간이면 좋겠다. 생각을 바꾸려면 말을 바꾸는 게 쉽다. 우리는 권력의 창에 찔리고 검은 옷 입고 일하는 민(民)이 아니고 사람(人)이다. 국가의 식민 국민이 아니고, 너랑 나랑의 나랏사람이다. 거기에 사는 주민(住民)이 아니고 주인(主人)이다. 시혜적 대상인 '민생'이 아니고 '인생'이다. 시장에서 일하며 시장에서 권리를 얻으려는 시민(市民)이 아니고 살고 살리며 모시는 살다의 '사람'이다. '대한국민'이 아니고 '대한인'이다. 우리를 깔보는 말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는 일본인이 만든 말 '민초'가 아니다. 뿔뿌리가 아니다. 뿌리이자, 줄기며, 가지며 잎새다. 나무와 나무가 어우러진 숲이다. 우리는 낱낱이(개체이자 개별자)인 동시에 모두(전체)다.
1980년대의 탁월한 업적 민중, 민중관, 민중사관, 민중예술 등을 계승하되 돌파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자연과 인간이 신나는 세상, 신을 낳는 세상이 진보 대 보수를 돌파했으면 좋겠다.
* 표준국어사전은 '신 나다'로 띄어쓰기가 규범이나 '신나다'로 붙여써야 한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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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4-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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