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4월 07일 14시45분
[온누리]벚꽃
여기저기 벚꽃이 핀다. 벚꽃처럼 일시에 피었다가 지는 꽃도 없을 것이다. 잎이 나기 전 전목(全木)을 가득 채우며 매달린 꽃은 탐스럽기 그지없다. 한 그루가 아니라 무리로 피어난 풍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꽃들이 나무를 뿌리째 뽑아 날아갈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 된다. 그런 만큼 벚꽃 명소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히말라야가 원산지라고 하나 정작 벚꽃에 열광하는 건 동아시아인들이다. 벚나무의 영어 표기 중 사쿠라(Sakura)가 있다. 일본인들이 벚꽃에 열광하기에 그렇게 표기한 것이다. 벚꽃이 피면 일본의 귀족들은 꽃그늘에 앉아 파티를 벌였다. 이 축제를 ‘하나미’라고 하는데, 이게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 됐다. 그래서 벚꽃을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여길 수 있으나 실제는 가을의 국화(菊花)이다.
워낙 일본과 연관이 깊으니 벚나무가 일본열도에서 들어왔을 거라고 착각할지 모르나,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를 목재로 써왔다. 병자호란 후 효종은 북벌을 계획한다. 그리고 활의 재료로 쓰기 위해 북한산 우이동과 장충단 근처에 벚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 또 고려시대 제작된 팔만대장경 목판의 절반 이상이 벚나무라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늘날처럼 대규모로 벚꽃을 즐기게 된 건 일본의 영향이 크다. 금방 피었다 지는 벚꽃보다는 강인한 매화를 우리 민족은 더 선호했었다. 1909년 일제는 나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던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며 창경궁에 사자, 코끼리 등 동물들을 들여왔다. 그리고 곳곳에 벚나무도 심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 창경원의 백미는 역시 벚꽃놀이였다. 특히 밤 불빛에 드러난 벚꽃의 향연은 눈이 부셨다.
1980년대 그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에 이사 보내고, 벚나무는 여의도 윤중로에 옮겨심었다. 윤중로가 오늘날 벚꽃 명소가 된 유래이다. 그후 진해 군항제, 경주 보문단지 등 벚꽃 명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그러자 단말기의 유동에 따라 실시간 벚꽃 인파를 표시하는 인공지능(AI) 서비스까지 나왔다.
벚꽃의 일본 말인 ‘사쿠라’는 변절자 또는 가짜라는 의미로 쓰인다.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고기 색깔이 벚꽃색을 닮은 말고기를 일본인들은 ‘사쿠라니쿠’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고기를 소고기로 속여 파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판 양두구육이다. 그러다 보니 사쿠라니쿠가 배신자나 위선의 관용어가 된 것이다. 실제 벚꽃 사쿠라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말이다.
우리 지역에도 벚꽃 명소들이 많다. 전주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 백리길 벚꽃이 피면 전국 마라톤대회를 열 정도였고, 남원의 요천이나 정읍천, 소양천 등도 꽃을 보러 사람들이 붐빈다. 그러다가 마이산에 꽃이 지면 온 산하 벚꽃 엔딩이다. 삶이 각박하더라도 잠시 벚꽃 그늘에 젖어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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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4-0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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