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강주영 - 2024년 03월 23일 20시42분
[신생전북론] `국가'가 `나라'를 먹어 버렸다
■17 새날을 여는 우리말 슬기한국민인가? 한국인인가? ‘임자’는 어디로 가고
‘민족’·‘민초’·‘국민’·‘시민’이 널리 쓰이는가?
부림을 받는 민(民)이 아니라 임자인 인(人)이다
민주(民主)가 아니라 인주(人主)가 되어야 한다
새로 태어남은 옛 것을 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옛 슬기가 버려야만 하는 낡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되었을 뿐이다. 우리가 쓰는 ‘민족’, ‘민초’, ‘시민’, ‘국민’ 이런 말들은 유럽이나 아메리카합중국 사람들의 말을 일본이 들여와 만든 말들이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쓴다. 이런 말들이 담고 있는 뜻들은 유럽사람들의 머리이지 우리 머리는 아니다. 유럽사람들의 머리라고 해서, 일본사람들이 만든 말이라서 버리자는 게 아니다. 들여온 말들을 가려서 좋은 말은 쓰고, 나쁜 말은 버리자는 게다. 훌륭한 슬기를 담은 우리 옛말들을 살려서 쓰자는 뜻이다.
겨레가 언제부터 민족이 되고 나라가 언제부터 국가가 되었을까? 겨레사관이라 하지 않고 왜 민족사관이라 할까? 그 말들이 옛글에도 있다고는 하지만 요새 쓰이는 뜻은 유럽사람의 뜻을 담고 있다. ‘임자’는 어디로 가고 ‘국민’, ‘시민’이니 하는 말들이 널리 쓰이는 것일까? 일하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을 말하는 민(民)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하는 인(人)은 왜 요새도 따로따로 쓰이는 걸까? 서민, 시민, 평민은 민으로 쓰는데, 그와 달리 정치인, 기업인, 예술인은 인으로 쓴다. 한국민인가? 한국인인가? 국민과 시민은 낱사람(개인)보다 크고 훌륭한가? 국민과 시민은 낱사람들보다 국가와 시장을 앞에 두어 낱사람들을 짖누르는 말들이다. 그 어떤 ~민, ~인도 낱사람보다 앞에 선다면 참 자유, 참 민주가 될 수 없다. 낱사람은 지멋대로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낱사람 하나하나가 그 무엇의 ‘임자’라는 말을 안에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민은 사람을 아래로 깔보는 말이다. 시장에서 자리잡은 사람을 말하는 시민(市民)은 ‘살리다’, ‘살다’의 뜻을 가진 우리말 ‘사람’보다 좋지 않다. 시민(市民)은 유럽에서 시장의 자유를 얻은 ‘부르주아지’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이지 시장의 사람이 아니다. 시장이 사람보다 앞에 설 수 없다. 시민은 시장에 붙잡힌 사람일 뿐이다. 설령 일본이 근대사상을 담아 만든 시민을 쓴다고 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슬기를 살려 모실 시(侍)의 시인(侍人)이라고 써야 맞다고 본다. 주민(住民)도 그렇다. 거기에 사는 일꾼으로 국가가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일뿐이다. 진정 민주나라라면 주민이 아니라 주인 주자의 주인(主人)이라 써야 맞다. 우리말로는 ‘주인’도 아니고 ‘임자’라고 써야 한다.
임자는 어떤 것을 가진 주인과 너를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전주사람 정여립이 말한 낱사람 모두가 천하공물의 주인이라는 그 임자로 필자는 새긴다. 임자인 낱사람은 국민보다 크고 훌륭하다. 유럽에서 들어온 개인보다 임자인 낱사람이 우리 슬기라고 여긴다. 임자가 사라지고 국민이 된 것은 나라를 국가가 먹어서다. 나라를 국가가 먹었다니 이 무슨 말인가? 나라와 국가는 같은 것 아니던가? 그렇지 않다.
필자가 곁에 두고 배우는 우리말 슬기묶음들,
2. 하나의 국가에 나라는 여럿이다.
그러면 국가와 나라는 무엇인가? 우리는 저마다 나라의 임자다. 나라는 무엇일까? 우리말 슬기를 밝히는 최봉영에 따르면 나라는 나랑, 너랑, 우리랑 할 때의 랑, 가거라, 오거라, 하라, 밥이라, 꽃이라 할 때의 라와 나, 너할 때의 나다. 나라는 나와 너랑 함께 얽혀 뭔가를 하는 산알(북한의 김봉영이 만든 힘(氣)의 바탕)이다. 꽃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는 다르지 않다. ‘라’는 말가름씨(품사)로는 이음어미, 맺음어미로 쓰인다. 하고픈 말은 ‘나라’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름아비(농부)의 나라, 지위(목수)의 나라, 배움이의 나라, 아이의 나라, 토끼의 나라처럼 나라는 늘 세워지고, 물같이 흐르며, 흩어지고, 새로 세워진다. 겨레는 무늬가 같은 사람들의 동아리다. 한땅바다에는 명태나라가 있다가 바다가 뜨거워져서 지금은 사라졌다. 한나라(우리나라, 하나가 아니라 크고, 밝고, 넓고, 하늘하다의 그 한)에는 많고 많은 저마다의 우리마다의 나라가 있다. 나랏말도 뫼와 물길을 가름으로 하여 서로 다르지만(사투리) 겨레로서 무늬가 같아 뜻은 서로 안다. 사람도 꽃도 나무도 저마다의 나라를 세우고 저마다의 나라얼개(정부, 체제)를 가진다. 이런 슬기로 새겨 보면 대한민국은 셀 수 없는 저마다의 나라가 서로 얽히고 뭉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가國家가 나라를 먹어버렸다. 최봉영에 따르면 국가(國家_의 국은 가름(경계)을 나타내는 밖의 口, 안의 창 과戈와 호구를 말하는 작은 口로 이루어져 있고 一은 땅을 말한다. 국(國)이란 말 그대로 창(법률, 형벌)으로써 저마다의 얼개를 가진 나라들을 억지다스림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묶은 것이다.
3.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인국이다.
나라의 무늬(법통)와 국가의 무늬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인문은 사람의 무늬이고, 천문은 하늘의 무늬다. ‘무늬’는 흔히 말하는 ‘결’과 같다. 그 사람과 나는 결이 다르다고 한국사람은 흔히들 말한다. 나라꼴과 국가꼴은 다르다. 나의 나라, 임자의 나라와 국가는 다르다. 나라를 가벼이 하고 국가를 앞세우는 이들이나 국부(國父)니 국가법통이니 한다. 국부니 국가법통이나 하는 것은 임자들을 홀대하는 말이다. 나라에도 나라어버이는 없어야 하고, 국가에도 국가어버이는 없어야 한다. 모래알 같은 사람마다 저마다의 하늘과 바다와 땅이 있고 저마다의 나라가 있는데 국부라니 이 무슨 파시즘인가? 물구름(수운 최제우)이나 바닷달(해월 최시형)을 국가어버이(국부)라 해도 필자는 싫다. 굳이 있어야 한다면 한겨례의 모두를 말하는 한사람(크다, 하늘하다의 그 한)이 으뜸이다. 우리나라 이름은 '한님나라'이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적어도 나라이름은 우리의 오롯한 말로 한글로 써야 한다. 대한을 쓴다 해도 민국이 아니라 ‘인’을 써서 ‘대한인국’이라해야 맞다. 우리는 다스림을 받는 민(民)이 아니라 임자인 사람으로서 인(人)이다. 민이 인이 되지 않고서는 민주라 할 수 없다. 민주(民主)가 아니라 인주(人主)가 되어야 한다. 부림을 받는 ‘민’이 아니라 그 스스로 임자인 ‘인’이 되는 게 전주사람 정여립의 천하공물 사상이고 우리 전북에서 가장 컷던 동학의 인내천 슬기다. 나랏말모이(국어사전)에도 1뜻으로 나라를 '국가'와 같게 풀이하고 있다. 2뜻에서는 “그 말이 나타나내는 세상이나 세계‘로 풀고 있다. 나랏말모이조차 유럽사람의 새김을 1뜻으로 담고 있다. 크게 잘못된 일이다. 국가가 먹어 버린 나라를 되찾아와야 한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국민’이라 쓰지 않고 ‘대한국인’이라 썼다. 그 뜻은 무엇일까? 사진 출처 - 인터넷
국민이라 아니라 나랏사람이다. 앞에서 말한 몇 말들은 다 유럽인들의 근대사상을 담고 있는데 나라가 아니라 국가가 앞서 있다. 근대가 만든 국민은 말 그대로 전체주의 사상을 담고 있다. 이렇게 오롯한 우리말 몇만 살펴도 우리의 슬기가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슬기를 되살리는 것에서부터 새로남이 열린다.
필자는 한자어나 외래어도 우리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뜻을 알고 쓰자는 것이다. 국민, 시민, 공민 이런 말들은 좋은 말들이 아니다. 이런 말들은 국가와 시장이 낱사람들인 임자보다도 앞서 있는 국가주의, 시장주의 말들이다. 학계에서는 국가를 통치체제라 하여 사회의 총합인 나라와 구분하여 쓰고 있다. 한 국가에 나라가 여럿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아주 생소할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말들은 어떤 사상을 담고 있다. 근대가 유통기한이 지난 얼개라면 버려졌던 우리 슬기를 찾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해월 최시형은 새소리, 매를 맞는 아이, 베를 짜는 아낙도, 털벌레 삼천도 모두 하늘님이라 하였다. 이 인내천의 동학사상을 살려서 쓰려면 모심을 담고 있는 우리말 ‘임자’를 살려서 국민보다 앞에 두어야만 한다. 민과 인의 가름을 없애고 모두 인으로 써야 한다. 시장에서 권리를 얻으려는 시민이 아니라 서로 모시는 사람들인 시인(侍人)이어야 한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동학정신을 말하는 이들을 위해 동학정신을 오롯이 가지고 있는 우리말들을 살펴 봤다. 동학정신이 정치의 양념이 아니라 정치의 알기가 되기를 바란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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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3-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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