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3월 23일 20시32분
[온누리]사회의 기준, 도량형
진시황을 폭군이나, 영생을 꿈꾼 욕망의 권력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분서갱유나 만리장성, 병마용은 물론 거대한 그의 무덤을 보면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최초로 대륙을 통일해 군현제를 정비하고, 화폐나 문자를 통일했으며, 도량형을 제정함으로써 국가기반을 다진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그가 제정한 도량형(度量衡)은 사회 유지의 근본이었다. 길이의 도(度), 부피의 량(量), 무게를 나타내는 형(衡)은 사회적 약속이자 정의의 기준이다. 고대에는 성인 남자의 한 뼘이 길이의 기준이었다. 사람마다 뼘의 길이가 다르니 들쭉날쭉했다. 한 뼘 22.4센티를 1자(尺)로 한 기록도 있다.
도량형의 출발은 음악에서 비롯됐다. 중국이나 우리의 한 옥타브는 황종에서 응종까지 12반음을 썼다. 중국은 그들의 주식인 검은 기장 100알을 1자로 삼았다. 10등분하면 1촌이 되는데 황종은 9촌짜리 길이의 대나무 1/3 지점의 음이다. 그러나 중국과 기후나 기장의 크기가 달라 우리와는 맞지 않았다.
세종 때 박연은 서른아홉 번의 상소를 올려 아악 정립을 주장했고, 세종의 허락하에 조선의 황종율이 제정된다. 박연은 황해도 해주에서 생산되는 중간 크기의 기장 100알을 일렬로 놓고 그 길이를 1자로 정했다. 이게 황종척으로 34.72센티이다. 기장 한 알의 폭은 1푼(分), 10푼은 1촌, 10촌은 1척(尺), 10척은 1장(丈), 10장은 1인(引)이다.
황종척의 길이에 성인 남자 손가락 크기인 내부 직경 1.2센티 대나무 안에 기장 1,200알이 들어간다. 이를 1약(龠)이라 하고, 10약을 1홉(合), 10홉을 1되(升), 10되를 1말(斗), 10말을 1짝(斛)이라 했다. 또 1,200알의 기장 무게를 12수(銖), 24수를 1냥(兩), 16냥을 1근(斤), 30근을 1균(釣), 4균을 1석(石)으로 정하고 그 무게의 추를 달아 저울을 만들었다. 사방 6자를 1평으로 면적도 측정했다.
암행어사에게 마패와 함께 왕은 유척(鍮尺)을 내렸다. 유기로 만든 25센티 길이의 자인데 4면에 다른 단위가 새겨있다. 곡식의 양을 재는 영조척, 옷감을 재는 포백척, 토지를 재는 주척 등이다. 관리들이 제 맘대로 정해 세금을 더 걷거나 땅을 빼앗았기에 이를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도량형은 왕조가 바뀌면 새로 정해졌다. 오늘날 쓰는 1자는 30.3센티이다. 이는 1902년 평식원(平式院)에서 정한 것이다. 기준은 달라도 방법은 같은 동양의 도량형을 도척법이라 한다. 이에 비해 유럽은 영국의 야드파운드법을 써왔다.
1790년대 프랑스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거리 1/1,000만을 1미터로, 정육면 1/10 미터의 4℃ 물을 1ℓ, 그 무게를 1㎏으로 하는 미터법을 입안했고, 1875년 16개국과 미터조약을 맺었다. 우리나라는 1959년에 가입했고, 현재 전세계 95% 정도가 미터법을 쓰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기준은 중요하다. 요즘 각 정당의 공천이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시끄럽다. 그 불공정은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 사회의 정의는 정확한 도량형으로 실현된다. 선거 역시 기준의 실행 여부를 평가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기다려진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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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3-2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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