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편의 시]전지(剪枝)
문영
팔이 잘려나간 자리에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어
깃털 하나 하나에 바람이 고이고
움직일 때마다 방울소리가 났어
그럴 때는 시냇물이 흐르곤 했어
반짝이는 물결을 거스르며 버들치가 퍼덕거리고
강남 갔던 제비가 봄소식을 몰고 오기도 했지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얼음 속에 갇혔던 말들이
올챙이 떼처럼 꼬물거리기 시작했어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이었던가
도적처럼 스며든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존재의 출현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하고
두려움에 은사시나무 떨 듯 휘청거리던 사람들이
은신처를 찾아 숨어들고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었던 거야
어떻게 세상이 그렇게 공평할 수가 있어
야호! 누군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장다리꽃이 만발한 채전에 눈사람을 심었었지
희망이 눈물이 되는 순간을 놓쳐버렸던 거야
팔뚝이 잘려나간 자리 환상통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던 밤에는
*‘은하수 계곡을 따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곤 했지
얼룩 같은 잔설이 남아있는 산모퉁이를 돌아 나와
탱자나무 가시에 박힌 기억을 좇는
한쌍의 호랑나비를 보았어
얼어붙었던 땅들이 모두 일어서고 있었던 게지
환호성 소리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뒤로 벌러덩 자빠질 뻔했어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려 힘껏 빨아올린
희망들이 창공으로 솟구쳐 꽃이 되는 순간이었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라스 애덤스)에서 따옴
문영 시인은
1997년 '한맥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장
전북문인협회,전북시인협회 회원
시집 ‘똥파리’,‘언젠가 푸르던 혹성의 비망록’ 등 발간
지면 : 2024-03-18 14면
http://sjbnews.com/809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