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붕어와 전복을 멀리한 기건(奇虔)
정부가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사법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동시에 의사들의 의료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한 특례법 제·개정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중인 특례법은 책임·종합 보험에 가입한 의료인에 대해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건(奇虔, 1390~1460)은 학행으로 이름이 높아 세종 때에 포의(布衣)로 발탁되어 지평에 제수됐다. 그 뒤 연안군수가 됐으며, 1448년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에 부임,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나올(羅兀 : 너울이라고도 함)을 창안해 부녀자들의 외출시 머리 덮개로 이용하게 해서 우리나라 풍속에서 너울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뒤에 청백리에 뽑혔으며, 장성의 추산서원에 제향됐다.
조선시대 때 제주는 공립적 성격의 의료기구도 설치·운영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질막(救疾幕)이었다. 이는 제주목사 기건이 세운 것으로 오늘날의 환자 수용구호시설과 같았다. 고려·조선시대 때 수령의 성품과 행적은 민생의 편안함과 괴로움에 직결됐다. 수령이 선정을 펼쳤을 경우에는 주민이 두고두고 칭송·흠모했던 반면에 가렴주구 등의 악정을 행했을 때는 분노했고 심지어는 민란도 일으켰다. 중앙 정부도 사신을 파견해 수령의 부정행위 여부 등을 감찰했으며 혹 민란이 발생했을 경우는 진압·위무하는 한편, 수령을 처벌·파직해 주민의 분노와 억울함을 진정시켰다.
제주 지역도 행정단위의 변화에 따라 각종 수령이 파견됐다. 이들의 성품과 행적도 제주 사람의 민생과 그에 따른 희비를 좌지우지했다. 이들 제주의 수령 가운데 현재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선정관이 제주목사 기건이다. 그는 1443년 제주목사로 부임해 와
이임하기까지 3년 동안 전복을 먹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제주 사람의 칭송을 받게 됐다. 기건이 전복을 먹지 않게 된 것은 전복을 캐다가 번번이 사람이 희생되는 등의 제주 실정을 직접 목격했던 점이 크게 작용한 듯싶다. 그는 제주목사로 오기 전 연안군수를 지낸 적도 있었다. 이때도 주민이 붕어 공물(貢物)에 바칠 붕어잡이에 힘들어 하자 부임 3년 동안 붕어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기건은 자신이 수령으로 부임하는 지역의 주민이 바로 눈 앞에서 고달파하는 것을 못 참는 성정(性情)을 지녔던 것 같다. 오늘날에 와 기건은 전복 관련 선정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보다 더욱 주목돼야 할 선정은 구질막의 설치다. 구질막은 기건이 제주의 한센병 환자를 수용구호코자 세운 의료기구였다. 최근의 의료사태를 보니 무수히 많은 생각이 난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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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2-2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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