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강주영 - 2024년 02월 25일 14시26분
[신생전북론 13회]지역을 기업의 연쇄점과 전자거래가 먹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소멸하고 신생하는 것들카카오 콜빵·전자주문기·거대 편의점 등
사람 사이의 연대와 정을 소멸시키고 있다
택시 업계에서는 '길빵', '줄빵', '콜빵'이라는 말이 있다. 길빵은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는 것이고, 줄빵은 터미널이나 역 같은 곳에서 줄지어 대기하는 택시고, 콜빵은 승객이 있는 장소에서 택시를 부르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길빵을 한다. 아주 드물게 콜빵을 하지만 그것은 몸이 불편하거나 짐이 좀 있거나 할 때지 거의 하지 않는다. 콜빵을 하는 경우라도 카카오택시가 아니라 지역콜을 애용한다.
카카오콜빵은 요금을 묻거나, 목적지를 물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여성들이 택시를 탈 때 차량 번호판을 찍는 등의 일도 없고, 거꾸로 택시 기사가 승객들로부터 위협을 느낄 필요도 없다. 모든 정보가 카카오콜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나도 한 2,000 원 정도 더 낼 여유는 있지만 카카오 콜빵을 않는 것은 새치기란 생각이 들어서다. 카카오콜을 이용하기 어려운 스마트폰맹이나, 콩나물 값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카카오 콜빵은 택시잡기 새치기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 불공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사안은 정의론으로 유명해진 마이클 셀던이 다룬 사안이기도 하다. 카카오 콜빵은 택시업계의 경영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카카오콜빵 때문에 전통적인 길빵택시는 소멸하고 있다. 길빵택시에서 목적지를 묻고, 요금을 정산하다 보면 이래저래 세상 이야기도 하게 된다. 골목길까지 들어가자는 말도 하고, 그렇지 않고 좀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양보와 다툼도 있지만 사람 사는 매력도 있다. 승객이나 기사나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하는 곤혹도 있어서 승객이나 기사나 콜빵만 하는 이들도 있어서 길빵을 아예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택시를 예로 들어서 말하려는 것은 거창하게만 들리는 ‘문명의 변화’란 어느 날 문득 쓰나미처럼 오는 게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콜 같은 플랫폼 시스템이 이미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2. 편의점의 진화와 자치자급력의 소멸
좀 큰 골목마다 있는 편의점을 보라. 대기업 편의점은 진화하여 이제 긴급 돌봄 서비스까지도 제공하고 있다. 책, 간단한 전동 공구도 빌려주는 편의점도 등장했다. 앞으로 편의점은 전등 갈기, 막힌 배관 뚫기 등 간단한 살림 도움까지도 진출할 것이다. 편의점은 전산망을 이용한 플랫폼 시스템으로 물자를 조달한다. 이렇게 하나 둘 우리의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삶은 자본이 만들어 놓은 플랫폼 체제로 흡수된다. 그들이 만든 설계에 따라 우리의 생활 모습이 바뀌고 있다.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더 편리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편의점의 성장은 자치적이고 자급적인 경제의 많은 것들을 소멸시키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넘쳐났던 수공업적인 양복점, 의상실, 빵집, 구둣방 등은 다 소멸하고 거대 기업의 대리점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여기에 따라서 마을의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덤으로 주는 정도 없고, 마을에 붙박이로 살면서 오가는 훈훈한 정도 없고, 다만 교육 받은 지침에 따른 기계적인 친절함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이 친절함도 전자주문기에 따라서 진행된다. 모든 것들이 명확하다. 계산원과 군말을 할 필요도 없고, 깔끔해서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 사는 맛은 없다. 누군가의 개입이 싫고 그저 혼자서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매장의 전자주문기가 더 편리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네는 여전히 사람과 말을 섞으며 하는 주문이 좋다. 콜빵, 전자주문기, 편의점 등은 사람들 사이의 연대와 정을 소멸시키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은 국가와 기업이 설계한 일방통행을 강제당하고 있다. 전주 동문길
3. 전자주문기가 없애는 것들
2022년 온라인 거래액은 대면 거래를 넘어섰다. 국내 유통 총 물류의 50% 이상이 온라인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제는 협동조합도 플랫폼기업과 연동되지 않으면 판로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한정된 지역을 넘어서 전국적으로 자신의 제품을 알리고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지역 사람들이 내 가게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던 제품을 온라인으로 전국에서 구매하기 때문에 지역 가게가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한 번은 전주에서 남원 가는 직행 버스를 타려고 간이 정류장 전자표발행기에서 표를 뽑았다. 70세 정도로 보이시는 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보시오, 표 좀 사 주시게. 표를 살 줄 몰라서 차를 놓쳤다네.” 그 분 카드로 버스표를 구매해주었다. 버스를 함께 타고 가는데, “나 같은 늙은이는 버스 타지 말라는 것이여, 매표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탄하신다. 효율만 생각하니 배려가 없어졌다. 버스회사에 재정이 투입되니 효율화를 반대할 일만은 아니지만 지자체에서 몇 억을 더 투자하여 몇 곳의 간이정류장에서 전자기기 약자를 위한 재정 투입을 하면 시민들이 반대할까? 간이정류장을 지역관광안내소, 물품보관소와 통합해 운영하고, 몸이 불편한 분들의 승하차를 도와주는 배려의 정책이 아쉽다.
마을에서 무엇이 소멸하고 신생하고 있는 것일가? 문명변화는 어느날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주동문길
4. 마을통합돌봄체제가 필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멸과 신생에 대해서 말했다. 신생과 소멸은 거창하게 말하면 '문명의 변화'다. 이번 글에서 말한 신생은 지역민들이 스스로 만드는 신생이 아니라 외부의 플랫폼 기업들에서 만들어져 지역에 이식된 신생이다. 신생이라고는 하지만 지역이 플랫폼기업의 식민지로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치자급 능력이 소멸되고 있음을 말한다. 스스로 만드는 신생은 없고 외지에서 온 신생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지역통합돌봄관(센터)을 생각해 봤다. 지자체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한다. 그 일이라는 게 길거리 잡초 뽑기 등 노인들의 경력이나 경험과 무관한 일이 대부분이다. 노인들은 마을의 살림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지역통합돌봄관에는 마을의 모든 필요 기능을 넣을 수 있다. 마을 생산품과 소비, 긴급돌봄, 교양, 대행, 지역관광, 치안, 작업, 주거돌봄, 보관, 공구대여....물론 유자격자와 청년들도 일할 수 있다.
2023년 『황해문화』가을호에 쓴 필자의 글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의 결론을 삼는다. 몇 글자 고쳤다.
"현재 자치는 국가하도급자치다. 대안의 자기조직화로서 자치가 아니다. 지역은 국가의 하위개념이다. 국가주의는 위 택시나 편의점에서 보는 것처럼 단일한 삶의 모형을 강제하는 단일 표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은 독자적인 다양성의 생명체가 아니라 일국주의의 지점인 지역 또는 기업의 체인점이다. 사람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구호로 내세워진다. 한때 주식회사 00군이란 표어가 관심을 끈 때도 있었다. 지자체가 주식회사라니! 국가주의가 단일 표준주의를 관철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파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은유하자면 지역은 대기업 편의점의 체인점이다. 지역은 국가와 기업이 설계한 알고리즘으로 존재한다. 마을에 있는 편의점만 편의점이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 등도 편의점이다. 필자도 참여하는 협동조합원들과 편의점의 무한진화를 토론한 적이 있다. 공구 대여, 긴급돌봄 서비스, 고령자 주택의 전등 갈기 등도 편의점의 영역으로 흡수되고 있다. 장차 편의점은 치안안심서비스, 도서관과 미술관, 전기충전소 등과 결합하면서 진화할 것이다. 기업이 운영하는 마을통합돌봄점이 된다. 생활은 점차 대기업 편의점이 설계한 방식으로 포섭된다. 협동조합원들의 대안은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대안편의점 – 마을통합돌봄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정부 보조금 없는 영성적이고 공익적인 대안편의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신생체제와 나누고 모시는 영성이 동시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 이 글의 택시 '길빵' 등은 전북 출신으로 서울에서 택시를 운영하는 김지영의 오마이뉴스 기고글 「빈택시들이 승객을 태우지 않는 이유」에서 일부를 가져와 필자의 의견을 덧붙여 인용했음을 밝힌다. 김지영의 허락을 얻었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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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2-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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