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배와 게를 함께 먹지 말고' 조선시대 한글 요리서와 그 속에 담긴 음식문화 조명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요리 비법: 장서각 소장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역주‘발간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조선 요리 비법: 장서각 소장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역주(주영하 외)'를 펴냈다.
'주식방문, 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등 고전 한글 요리서를 통해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의 음식문화를 살펴본 것.
신간 '조선 요리 비법'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한글 요리서인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 이후의 필사본 형태로 전하는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등 한글 요리서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음식문화를 낱낱이 드러내는 장서각 소장 귀중본 자료다. 그동안 이 책들은 보존·판독·해석 등 여러 문제로 연구자와 대중 모두에게 접근이 쉽지 않았다. 이에 국어학·음식학·생활사 전문 연구자들이 충실한 번역과 상세한 주석을 통해 국어학적 지식과 음식학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한글 요리서의 가치를 조명했다.
이들 한글 요리서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음식문화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게다가 병서 표기, 음운 변화 등의 특징도 돋보여 국어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조선 제21대 왕 영조는 52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한 소문에 끈질기게 시달렸다. 바로 이복형이자 선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이야기다.
'경종실록' 4년 8월 22일의 기록에 따르면, 경종은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원인으로는 그로부터 이틀 전 먹은 생감과 게장이 지목되었는데, 상극이라고 하는 감과 게의 조합은 이제는 엉성한 논리임이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실록에서도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리는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위험하게 여겨졌다.
이 책에 수록된 '음식방문이라'에는 감·배·게를 함께 먹지 말라는 구절과 더불어, 조선시대 음식문화에서 각별히 유의해야 할 지침을 함께 싣고 있다.
“감과 배와 게를 함께 먹지 말고, 과실이 땅에 떨어져 구더기가 꼬인 것을 먹지 말며, 먼저 익어서 떨어진 과실은 반드시 독한 벌레가 숨어 있을 것이니 먹지 말아야 한다. (564쪽)"
옛날부터 음식에는 각종 신비하고 주술적인 이야기가 함께 따라다녔다. ‘낙지’를 먹으면 시험에 ‘낙제’한다, 게(蟹)를 먹으면 시험에 떨어져[解] 고향으로 가야 한다. 이 이야기들은 허황하고 어처구니없게 들릴지언정 우리 민속의 일면을 구성하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이 책에 수록된 '음식방문이라'는 밤을 잘 굽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개 중 남몰래 하나를 빼내는 데 성공하거나 눈썹에 문지른 뒤 구우면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 효능이 일반적인 미신과는 달리 기복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터무니없는 조리법은 웃음을 자아내며 선조들의 재치를 짐작하게 한다.
“밤 구울 때 타지 않게 하는 방법. 밤을 구울 때 그중 하나를 남이 모르게 손에 쥐어 감추고 구우면 모든 밤이 타지 않는다. 구우려는 밤마다 눈썹 위에 세 번씩 문질러 구우면 타지 않는다.(569쪽)”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는 그동안 '글로벌 푸드 한국사',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 등 음식문화와 관련, 여러 교양서를 펴냈다. 이번에 그가 기획하고 공동연구를 주도한 '조선 요리 비법'은 학자로서 그의 학문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신간이다. 한글 요리서를 발굴해 선정하고 영인·정서·역주를 함께 진행한 것은 물론, 전반부에 쓴 해제에서는 장서각 한글 요리서 3종의 서지와 구성을 꼼꼼하게 분석, 고증적 가치를 더했다./이종근기자
지면 : 2024-02-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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