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2월 13일 14시50분
[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재이야기]익산 왕궁오층석탑과 사리장엄구
익산은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로 관련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 왕궁면에 있는 왕궁오층석탑과 사리장엄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내에 백제왕궁박물관이 설립되어 문화재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 일대는 백제시대 왕궁이 있었던 역사성을 보이는 지명이 아직도 많은 가운데, 출토된 ‘왕궁사’, ‘대관관사’, ‘관궁사’ 등의 명문기와를 통해서도 왕궁이 사찰지로 변천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오층석탑은 전체높이가 8.5m이며, 1단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석탑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많은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보수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지붕돌의 모습이 백제계 석탑을 따르고 있고, 탑신부의 결구(結構) 수법이나 받침 표현 방식이 신라 석탑을 따르고 있다고 하여,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보수 공사를 진행하면서 받침돌의 구성 방식이나 사리장엄구의 양식 등이 확인된 뒤에는 후대까지 유행하였던 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 석탑의 양식을 더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심초석과 심주의 구조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의 받침돌 구조와 일치하는 점을 들어, 백제시대에 목탑을 석탑으로 번안(飜案)하는 과정에서 건립하였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사리장엄구는 왕궁리 오층석탑 1층 지붕돌에 뚫린 두 개의 사리 구멍과 탑을 받치는 기단 안쪽 심초석에 뚫린 세 개의 사리 구멍에서 발견되었다. 탑의 1층 옥개석 윗면에 뚫린 2개의 사리공에서는 ‘유리제사리병’, ‘금제사리내함’,‘금동제사리외함’, ‘금제금강경판’, ’금제금강경판내함’, ’금제금강경판외함’이 발견되었고, 기단부에 뚫린 3개의 사리공에서는‘청동여래입상’, ‘청동요령’, ’유리구슬’이 나왔다.
특히 이 사리장엄구중 금제금강경판은 금동함 속에 들어 있으며, 경판 19매는 좌우 두 곳에서 경첩으로 연결하였고 포개어 접어서 금띠로 묶도록 되어 있다. 경판 각 면에는 17행에 걸쳐 자경(字徑) 약 7㎜의 경문을 활자나 정밀하게 조각된 판목(板木)을 대고 찍어낸 듯 자획이 분명하다. 최근 복원 실험을 한 결과 원판에 『금강경』을 반대로 새긴 후 은판을 놓고 망치로 두드려 글자를 양출(陽出)시키고 금으로 도금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특수한 공예기법과 수준높은 서체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희귀한 자료로, 깨끗하고 눈부신 19매의 금판은 유례없이 정교한 타출(打出)기법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공예사 연구에 새로운 기점이 되고, 인쇄 문화의 새로운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사리장엄구의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기단에서 나온 금동여래입상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양식을 띠는 점을 근거로 석탑과 사리장엄구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사리장엄구의 구성이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기록된 639년 제석사가 불탔을 때 수습된 제석사지 목탑 사리장엄구에 대한 설명과 비슷하다는 점이나, 금제 사리함의 문양이 백제 금속공예품과 유사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백제 무왕대에 제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던 중 2009년 미륵사지 석탑 수리 공사 중 탑에 사리장엄구를 봉안한 주체(무왕의 왕후)와 연대(639년)를 알려주는 「사리봉영기」가 발견되면서 두 사리기의 문양과 제작 기법이 비슷하다는 분석결과가 나와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도 백제 말에 제작된 것이라는 견해가 더 힘을 얻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백제의 전통이 강하게 남은 후대의 것이라는 견해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사리장엄구는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전시되어 오다가 미륵사지에 국립익산박물관이 개관되면서 제자리를 찾아 귀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석탑과 사리장엄구가 오랜 세월 이 지역을 지켜오면서 민중과 함께했던 만큼 전설 또한 내려오며 신비로움을 더해왔다. 석탑에 관해서는 이곳에 한 노인이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살았는데 하루는 관상가가 아들과 딸 중 한 명만 데리고 살아야 큰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여, 노인은 먼저 탑을 쌓는 자식을 데리고 살겠다며 딸에게는 미륵사터 석탑을, 아들에게는 이곳 왕궁리의 석탑을 쌓으라고 하였다. 하지만 아들이 게으름을 피워서 딸이 미륵사 터 석탑을 먼저 쌓았고, 딸을 데리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다고 하니 왕실의 불사가 민중의 불심으로 확산되어 늘 함께 해 온 전설이라 하겠다.
또한 사리장엄구에 대한 전설 또한 내려오고 있는데, 왕궁리오층석탑을 해체하던 당시 불치병에 걸린 석공이 석탑에서 사리장엄구를 친견하고 병이 완치되었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국보의 보고(寶庫) 지역인 이 왕궁리 유적지에는 7세기 전반 백제 왕궁이 운영된 곳이였기 때문에 대형 전각을 포함한 33개 건물과 물건을 만드는 공방, 수세식 화장실, 정원과 후원 시설 등이 발굴되어 고증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복원 또한 이루어지고 있으니 신비로움을 담은 이 문화유적지를 찾아 신년의 소망을 기원해보는 시간이 되시길 염원드린다.
/이승연(전북 문화재전문위원,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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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2-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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