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2월 04일 13시42분
[메아리]미생물과 함께 하는 K 씨의 하루
아침 8시 출근해 회의를 마친 후 미국에서 온 이메일에 답장하고 바이어와의 상담 전화 몇 통을 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점심으로는 무얼 먹을까? 고민 끝에 그냥 편하게 된장찌개 백반으로 결정한다. 점심 식사 후 요즘 깊은 향과 맛에 빠지게 된 발효차 한잔을 마신 후 바로 거래처로 향한다.
오후 5시, 거래처 3곳에서 일을 마친 후 바로 퇴근길에 오른다. 오늘은 저녁 약속이 2건이다. 먼저, 친환경 사회를 지향하는 동호회 모임에서 K 씨는 주제발표를 해야 한다. 화석연료로부터 지구를 지키고자 세계 최초로 석유 없이 사는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든 ‘오스트리아 무레크’ 마을의 사례를 함께 토론하는 자리이다. 토론회 후 치즈를 곁들인 가벼운 와인 파티는 보통 저녁 9시까지 이어지지만, K 씨는 7시쯤 자리를 뜬다.
모처럼 만의 대학 동기들 모임에서는 친환경 삼겹살과 상추를 안주로 정겨운 이야기가 오고 간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10시, 그래도 오늘 운동량은 채워야 하기에 편한 청바지를 갈아입고 반려견과 함께 인근 공원으로 산책길에 나선다. K 씨는 잔디밭에 실례한 반려견의 분변을 얼마 전 공원에 설치된 친환경 연료 생산 가로등에 넣는다.
이 장치는 가로등 밑의 투입구에 넣은 개똥이 메탄으로 발효되면서 생기는 에너지로 가로등 불을 밝히는데, 미국 MIT가 개발해 ‘매사추세츠 주의 스파크 공원’에 적용한 기술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오니 11시, K 씨는 세탁기에 친환경 세제와 함께 빨래를 넣어 돌리고 아토피 방지 비누와 기능성 치약으로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 후 잠자리에 든다.
K 씨의 평범한 일상 속, 아침부터 밤까지 K 씨가 미생물과 함께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공존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질량은 전체 생물 질량의 60%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생물은 약 38억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생명체이자 지구를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환경으로 바꾼 주역이다.
생명체가 살기 어려웠던 지구에 가장 먼저 출현해 이산화탄소와 태양광을 이용해 산소를 만들어 지구 환경을 변화시키고, 직접 동·식물로 진화해 현재의 지구를 만든 존재가 바로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다양한 발효식품을 만들어 인류의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다양한 산업공정에 촉매로 활용되고, 이제는 인류의 병과 싸우는 백신 등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다시 K 씨의 하루로 돌아가 보자. K 씨가 먹은 요구르트나 빵, 된장찌개, 발효차, 와인, 치즈는 미생물이 만든 발효식품이다. 화학 농자재를 대체해 채소나 가축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는 친환경 미생물 비료·농약·사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오 수소나 메탄 등 바이오 연료의 생산에도 미생물이 매개하는 역할은 필수적이다. 음식물 쓰레기 분해나 친환경 세제, 비누·치약 등에도 미생물이 활용되며, 당뇨병약이나 청바지를 염색하는 인디고 색소 등 의약품·물질의 대량생산 공정에도 미생물은 친환경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미생물을 해로운 생물체로 인식하고 있으나, 병원체 등 실제 해로운 종류는 소수에 불과하다. 자연계에서 생산자와 분해자의 역할을 하는 미생물이 없으면 세상은 유지되기 어렵다. 발효식품 등 미생물이 생산하는 유용한 생산물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생물의 사체가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생태계에 쌓이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손을 내밀고 있는 미생물을, 마음을 열어 받아들여야 한다.
/박진우(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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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2-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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