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중국의 짝사랑, 대만
움추렸던 대만 내성인들을 자극한 사건이 일어났다. 1949년 2월 28일 거리에서 담배를 팔던 당시 40세 여인이 단속에 걸려 팔던 담배를 모두 빼앗기고, 심하게 폭행까지 당한 것이다. 담배는 전매국에서만 팔게 돼 있었으나, 남편 없이 혼자 먹고살기 위해 행상에 나섰다가 화를 입었다.
경찰의 과도한 폭력에 시민들이 나섰다. 표면으로는 당국의 무자비한 폭행의 저항이었으나 그동안 쌓여있던 내성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시위가 확대되자 국민당 정권은 군부를 내세워 시민들에게 발포한다. 이로 인해 시민 2만 명(최대 4만 명) 이상이 학살을 당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계엄령은 1987년에야 해제된다.
국민당 정권은 하나의 중국을 꿈꾸었다. 그 점에서 지금의 시진핑과 같다. 그러나 길은 극과 극이다. 국민당은 대만이 중심이 돼 중국 본토를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을 교화해 나갔다. 대만어를 없애고 북경어를 쓰도록 했다. 내성인들의 저항감은 더 커갔으나 대항하지는 못했다.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이른바 핑퐁외교의 성과로 데탕트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대만에게 청천벽력이었다. 이후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을 중국에 내줌은 물론, 유엔 지위도 잃는다. 중국과 대만 중 한 국가만 선택하라는 중국의 수교정책에 대만과 단교하기 시작됐고, 우리나라도 1992년 수교를 끊었다. 2023년말 현재 대만 수교국은 13개국으로 서구에서는 바티칸이 유일하다.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면서도 민진당으로 대만 민심이 흐른 이유는 중국이 보여준 위압적 태도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는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어떻게 억압하고, 지배하는지를 똑똑히 본 것이다. 폭력으로 제압당한 홍콩은 미리 본 대만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반중 정서가 급격하게 커졌다.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이 승리하자 대만과 단교하겠다는 국가가 또 늘었다고 한다. 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가 단교를 선언했고, 투발루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다. 두 나라가 이탈하면 대만 수교국은 11개국으로 줄어든다.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가진 중국의 입김 때문이라는 것이 대만의 입장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를 압박해 대만과의 관계를 끊게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외성인 중심의 국민당과 중국에서 벗어나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내성인 중심 민진당의 내부 갈등을 덮어두고 무조건 중국과 미국 갈등의 대리전으로만 선거를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멀어지는 대만이 중국으로서는 마땅찮을 것이나 그러면 그럴수록 대만의 정서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아시아 최상의 경제 선진국이자 민주화로 정권교체가 자유로운 대만을 힘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자신들의 수준부터 점검해야 한다. 힘으로 때려눕히려는 자세는 조직폭력배가 강제로 사랑을 차지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야만족에게 침략당했지만 수준 높은 문화로 그들을 교화시켜 중화를 이룬 위대한 중국의 역사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판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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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2-0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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