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새해에 이사하면서 책을 버렸다
책을 이틀 동안 열심히 버렸다. 리어카로 두 대 반 분량은 아파트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께 드렸다. 버릴지 말지 고민되는 책은 사무실에 옮겨 놓았다. 사무실에 옮겨 놓은 책도 거의 리어카 두 대 분량이다. 이틀여 책 나르고 집 청소하고 이사했다. 이사하는 곳은 조금은 오래된 아파트다. 이전 집보다 조금 커졌다.
하루 종일 짐을 나르고 정리한다고 했지만, 이사한 집에 한가득 짐이 쌓여 있다. 그중 거실에 내 책이 압도적이다. 어떤 이들은 한 해에 책을 300권, 1,000권씩 읽는다고도 자랑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속독하지 못한다. 빨리 읽어도 주에 한 권 정도다. 그것도 열심히 읽어야 가능한 수준이다. 읽는 속도보다 책 사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책은 계속해서 쌓여갔다.
쌓여 있는 책만 보면 독서뿐만 아니라 연구도 많이 하는 사람처럼 보이겠다. 공부보다는 그저 책 사는 게 취미라는 이유가 전부인데. 다른 욕심이 거의 없는데 책만큼은 왜 이렇게 버리기가 어려운지 모른다. 이번 이사로 인해 집에 책은 이전 가진 것에서 30% 정도만 남겼다. 거실은 작은 서재를 만들어 책장으로 한두 칸 정도만 쓰고 카페 형태로 꾸며 보려고 노력 중이다. 집에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일하는 공간을 한 곳 더 만들자고 작심했다. 조용히 집중할 곳 중 가장 효율적인 곳은 집이었다.
주에 최소 2, 3번 하는 줌(zoom) 회의나 강의를 위해서 배란다 한 구석에 ‘줌’만 할 수 있는 곳을 따로 꾸며 보려고 고민 중이다. 컴퓨터 하나 올라가는 작은 책상이면 족하다. 이유가 있다. 우리 두 아이는 수년 동안 내가 밤마다 하는 강의와 회의를 거의 들으며 컸다. 이전 집에 거실이 가족 전체의 책상과 책장이 나와 있는 도서관이자 서재였다. 공간이 작아서 그곳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각자 방이 생겼다.
근 이주 간 몸이 좋지 않았다. 며칠은 기침 때문에 잠도 못 잤다. 지역에 이비인후과 원장님 덕에 기침도 거의 멈췄고 많이 좋아졌다. 이사하면서도 피곤했지만, 어찌 됐든 이사는 했고 조금씩 집도 정돈이 되는 중이다. 연말에 밀린 사무실 업무도 거의 정리가 됐다.
새해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중얼거림을 자주 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내가 하고 싶지도 않지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에 발을 걸친 게 너무 많다. 이번 해에는 내 중얼거림처럼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로서, 사회적 가치에 따라 해야 되는 일”만 집중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마감에 불안해하지 않고 잘하면서 즐겨 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보면 웃어주는 이들과만 일하면 더 좋겠다.
1월 초 중순까지는 기존의 일 중 정리해야 할 일을 이사 하며 내다 버린 책들처럼 리어카에 실어 보내련다. 조금 더 슬림해지고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책처럼 일도 내려놓고 버려야 할 게 많다.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내려놓지 않고 들고 있으니, 몸만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버려야 가벼워지고 움직임도 좋아진다. 책을 통해 성찰하면서 어떨 때 즐기기까지 하는 소중한 것이지만 읽지 않으면 짐만 되듯이, 우리네 삶에서 하지 않(못)으면서 가지고만 있거나 걸친 일들은 빨리 내려놔야 옳다. 새해에도 무언가 기획하고 움직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존에 이런 일들을 빨리 내려놓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인다.
한해가 시작됐다. 송구영신 예배 다녀온 후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어 일출 보는 장소에 나가려는 생각도 못 했다. 아파트 베란다 보니 해가 떠오른다. 커튼이 없어서 햇빛 때문에 몇 시간 못 자고 잠에서 깨고 말았다. 떠오르는 태양 보면서 이번 해는 최소한 버릴 책이 없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했다. 버릴 책은 삶의 모습과 닮았다. 가지고 있지만 짐만 되는 일이다. 책도 일도 옷도 물건도 일단은 사용하지 않는 것을 내려놓고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는 노력이 더욱더 필요한 새해다. 최소한 나에게는. /정건희(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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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1-0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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