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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종근
- 2022년 05월 17일 15시28분

'일문삼강(一門三綱)' 아버지 절의지키고, 이유 정유재란 때 순국하고 부인 김씨 순절

[부안 ' 타루비'의 주인공 이유의 행적 알고 보니].....'도곡실기' 한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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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실기(번역 이은혁·사진, 편자 이창환, 이안범, 출간 부안인터넷신문)'가 번역 출간됐다.

도곡(桃谷) 이유(李瑜, 1545~1597)는 조선중기 유학자로서 부안군 상서면 도화동에 은거했다. 임진왜란 때 의군을 후원하고,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부안을 지키다 청등벌전투에서 순국하니 부인 김씨도 따라 순절했다.

그는 대사간 장영(長榮)의 아들로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함평이씨로, 그의 숙부인 이억영(李億榮)의 양자로 입계, 양아버지를 따라 부안 상서면 도화동(桃花洞)으로 이거, 맑은 시내 물가에 초당을 짓고 은둔하면서 경사를 강론했다.

여러 차례의 조정의 부름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의 처가는 부안읍 옹정으로, 부령(부안) 김씨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유는 고경명, 조헌, 김천일의 진중에 의병과 군량을 모아서 보냈다고 한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는, 왜군이 부안에 침입하자 그는 의병을 이끌고 상서면 청등에서 적군과 3일간에 걸쳐 치열하게 싸워 그들을 물리쳤다. 왜적이 군사를 정비하여 침입하자 진퇴를 거듭하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부인도 남편을 대신해 의병을 지휘하다가 역시 전사했다. 이때 왜적들은 이유의 집까지 쳐들어가서 집과 귀중한 문권 등을 태워버렸다.







적군이 물러간 뒤에도 부부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겨우 옷가지와 신발 등을 수습, 초혼장으로 장사를 지내니 부부의 슬픈 참사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가장(家藏)의 문집이 소실되어 전하는 문장이 없으나, 전적지에 '타루비(墮淚碑)' 즉 '눈물의 비'를 세워 충렬을 기렸다.

'비석에 적혀 있는 비문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는 의미로, 김태수 선생이 지은 비문은 정유재란 당시 이들 부부의 죽음에 대한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죽강(竹岡) 남대희(南大熙)는 '의사도곡이유전'을 지어 '일문삼강(一門三綱)'이라고 했다.







'일문삼강(一門三綱)'은 아버지 낭곡 이억영이 단종에게 절의를 지켜 부안에 은거한 것, 도곡 이유가 정유재란 때 순국한 것, 부인 부령김씨가 함께 따라 순절해 충과 열을 다한 것을 높이 평가한 말이다.

1951년에 후손들이 산재한 기록들을 모아 편집한 '도곡실기'가 전하며, 2021년 부안 민충사에 위패가 봉안됐다. 1981년 4월에 변산문화협회 주최로 부안군 상서면에 타루비를 복원하, 비문은 김태수가 찬하고, 전면서는 강암 송성용, 후면서는 아산 송하영이 썼다.

역자인 임지당 이은혁은 문학박사(한문학)로,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을 수상(1990)하고 동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보고읽는 서예, 국역서로 조선환여승람(김제), 중국서예사, 중국서론사, 중국서론집, 백석유고 상・하, 한국서화제발선집 등이 있다.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객원 교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강의전담교수, (사)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립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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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2-05-1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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