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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09월 22일 11시09분

[기고]완주군 경천면 신선봉(선인) 봉화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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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남(완주 산성연구회장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연구원)





완주군 경천면에는 저멀리 완주와 진안의 경계를 가르는 싸리재에서 시작하여 왕사봉과 702고지 선녀 남봉 불명산으로 이어지는 금만정맥이 굽이쳐 흐르는데 선녀 남봉에서 아래로 서래봉 산줄기따라 내려 서면 요동마을 앞에"신선봉"이라는 범상치 않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신선봉은 고산에서 대둔산로를 따라 승용차로 10분정도 달리다 보면 용복 터널을 지나서 용복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구재마을까지 가면 마을 뒷산 왼쪽에 우람한 바위 봉우리가 보이는데 신선봉이다.

신선봉 오르는 등산로는 몇곳이 있는데 우선 구재마을 주차장에서 하차를 하고 산 아래에 있는 묘지 옆을 따라 옛날 산불로 큰 나무는 스러지고 잡목만이 남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고 또 화암사 가는 요동마을 앞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옛길로 중간에 길이 사라져서 필자가 오르면서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또한 시우동 계곡 못가서 세인 청소년 수련원쪽으로 길이 있어 보이는데 쉽지가 않다.

신선봉 선인 봉화대는 서래봉 아래 신흥계곡 제철단지를 둘러싸고 좌측에 봉수대산 죽림 봉화대 그리고 우측에 불명산 화암 봉화대와 함께 원고산현지역도에도 뚜렷이 표기되어 있다.

필자는 9월 초순 곽장근 군산대 교수(가야문화연구소장)와 함께 신흥계곡 제철단지 주변 관방 통신유적 답사를 목적으로 신선봉 선인 봉화대에올랐다.

우선 구재마을 앞 다리 건너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앞에 보이는 묘지 옆을 따라서 오르는 길을 택하였다. 구재마을에서 신선봉을 올려다 보면 육안으로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서 급한 마음에 조금만 박차를 가하면 정상에 오를 것 같은데 이것은 오산이다. 막상 오르는 산길은 생각처럼 그리 만만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상까지 오르는데 계속 오르막길 이여서 완만하게 딱이 쉴곳도 없거니와 전에 산불이 발생한 곳이여서인지 큰 나무들은 불에 타서 고사목이 되었고 작은 잡목들만이 남아서 그늘 한 점 만들지 못한다.

비 내리듯이 온몸을 땀으로 젖어가면서도 산 허리 중간 정도에서 내려다 보는 경천면의 산과 들 경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아름다워 답사자의 산행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심적으로 달래준다.

산정에 힘겹게 도착해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에 정상 능선을 따라서 신선봉 선인 봉화대까지는 20여분정도 더 산행을 해야 도착한다.

신선봉 봉화대에 오르기 전 아래에는 봉화군이 생활했을 것으로 추정 되는 넓은 공터가 있으며 또한 신선봉 정상에는 봉화대로 추정 되는 자그만 돌무더기가 나타나는데 봉우리에 봉화대 석축은 거의 다 없어 졌고 누가 써 놨는지 "신선봉"이라는 표지석만 조그맣게 남아서 유적답사의 아쉬움을 달래줄 뿐이다.

곽교수는 "선인 봉화대는 봉화대 주변에 방호벽 석축을 두르고 중앙에 있는 암반을 동그랗게 파내어 화구를 만들어 불을 올렸다. 화구 중앙에 큰 참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임실이나 진안에 가면 이와 유사한 봉화대가 있다"라고 감회를 말한다. 또한 선인 봉화대에서 바라 본 주변은 사면이 한눈에 들어는 길목 요지라 이곳에 봉화대를 둘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중요성은 두말이 필요가 없다.

선인 봉화대 주변에 있는 관방 통신 유적을 살펴보면 저멀리 서쪽으로 대둔산로를 넘어 경천호수와 만수산성 화산면의 고성산성과 그 뒤로 천호산성 등이 한 눈에 목격되며 남쪽으로는 가까이 종리산성이 중앙에 자리한다. 남쪽으로 봉림산 기린 봉화대 죽림 봉화대 그리고 신흥계곡 제철단지와 그 위 서래봉 선녀 남봉 시우동 봉화대가 있고 북쪽으로는 용계재와 용계산성 불명산 화암 봉화대 천등산과 대둔산 탄현봉화대 탄현산성 신복 봉화대등이 손에 닿을것 같다.

신선봉 선인 봉화대 바로 아래 암벽 위에 서서 사면을 굽어 보니 완주 동북면이 한눈에 들어 온다. 호연지기가 절로 느껴지며 아둥 바둥하는 세상사가 우숩다.우리 선조들께서 이곳을 신선봉 선인 봉화대라 명칭한 이유를 알겠다. 곽장근 교수와 필자는 그저 바라 보기만 할 뿐 할말을 잃고 이렇게 빼어난 경관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우리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필자는 봉화대나 산성을 찿아 가면서 생각하기를 지금에야 나무가 울창하니 숲을 이루어서 산속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 산에 나무가 없어 민둥산일때는 어느 산이나 계곡에서 때가 되어 연기가 올라 오면 우리 선조들은 "밥을 짓고 있구나, 우리도 밥 먹어야지" 라고 했을 것 같은 재미 있는 상상도 가끔 해봤다. 옛날에 봉화대를 지키는 봉화군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필자는 봉화대에 오를때마다 그때 봉화대에서 생활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굼증이 가시질 않는다. 곽교수와 필자는 이번 가을 오색단풍이 한창 무르 익을때 신흥계곡 서래봉 능선을 따라 선녀남봉 시우동 봉화대에 오를 생각에 마음 설레이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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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1-09-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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