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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강교현
- 2020년 08월 13일 16시51분

“두살 때 끌려간 아버지, 독립유공자로 돌아왔다”

광복절 맞아 독립유공자 선정된 고(故)양한근 옹 유족
지난 1931년, 비밀결사 통해 반제사상 전파-투쟁한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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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양인자(오른쪽)씨가 남편 조달형씨와 함께 선친의 독립유공자 선정 소식에 감격하며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 75주년 광복절 `숨은 독립운동가'

“꿈에도 그리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독립유공자가 돼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머니를 통해 들은 선친에 대한 소식을 지난달 새롭게 알게 된 양인자(여‧71‧완주군 봉동읍)씨. 그는 독립유공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2살 때 아버지가 일제에 끌려가셨다고 들었다. 그 뒤로 소식 없이 평생을 사진으로만 바라보며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소식 듣는 것은 진즉 포기하고, 죽기 전에 아버지 사망 신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지난 5월에 신고를 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전북동부보훈지청으로부터 아버지 고(故)양한근 옹의 독립유공자 선정 소식을 들었다.

양씨는 “처음 전화가 왔을 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무척이나 놀랐다”며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단 한 장의 아버지 사진을 꺼냈다. 원래는 작은 증명사진 크기였지만, 혹시나 잃어버릴까 애지중지하다 사진관에서 큰 액자로 만들었다.

고(故) 양한근 옹은 지난 1931년 전주공립제일보통학교 5학년 중퇴 후 전주청년 동맹에 가입했다. 비밀결사를 통해 길거리 청년들을 대상으로 서적을 교부하는 등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사상을 전파하고 투쟁했다. 이 때문에 일제에 체포돼 옥살이를 했고, 그 뒤로 유족들은 소식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셋째 딸 양씨는 “살아생전 홀로 4남매를 돌보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주에 수차례 오고 갔다는 이야기를 해줬다”며 “아버지 소식을 듣지 못하고 평생을 가슴 아파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어느덧 일흔 살이 넘은 딸은 국가에서 아버지의 공적을 찾아준 것에 크게 감격했다. 양씨는 “다른 형제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았다. 아버지 유골은 찾지 못했지만, 죽기 전에 이렇게라도 소식을 들려 줘서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면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 조달형(73)씨는 “아내는 평소에 장인과 장모 이야기만 하면 눈물을 흘렸다”라며 아내 손을 꼭 잡았다.

13일 전북동부보훈지청에 따르면 전북지역 독립유공자는 300여 명이다. 이들 중 단 1명만이 94세로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유족이다.

독립유공자는 본인과 자녀, 손자까지 정부에서 보상금과 교육지원, 취업지원, 보훈병원 이용 시 의료비 60% 감면 등을 지원하고 있다.

동부보훈지청 관계자는 “독립유공자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이 성과로 지난해와 올해 각각 3명의 유공자를 찾았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독립유공자들을 찾아 유족에게 자긍심과 혜택을 주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강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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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0-08-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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