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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양정선
- 2020년 08월 09일 15시15분

"자식같이 키웠는데" 농가 휩쓴 역대급 폭우

"입추에 비가오면 한 해 농사 망친다더니"
잠기고, 병들고, 죽은 작물에 헛웃음만
폭우에 벼, 고추, 멜론 등 농지 7,883㏊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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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김제 백산 한 농가의 고추들이 비 피해를 입어 검게 변해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기습적인 폭우가 쏟아진 9일. 임실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는 이금복(58)씨는 바닥에 나뒹구는 복숭아를 주어들며 눈물을 삼켰다. 비바람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나간 복숭아로 농원은 노란 들꽃이 핀 듯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땅바닥을 뒹굴던 복숭아를 집어도 죄다 멍이 들어 못쓰게 된 것들 뿐이다. 황도는 짓물러진지 오래고, 단맛이 대신 복숭아 속을 채운 물은 상품성을 앗아갔다. 이씨는 “‘피해 없이 그치겠거니’ 했던 비가 어느 한 순간에 강물을 이뤄 밭이며 농원까지 훑고 지나갔다”며 “이제 팔 것 없이 죄다 폐기할 일만 남았다, 올 해 농사는 말 그대로 쪽박이다”고 토로했다.

빨갛게 물들어가야 할 고추는 제 빛깔을 잃은 지 오래다. 김제 백산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박오복(60)씨는 검고 하얗게 썩은 고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먹고 말아야지 뭐” 하얗게 병이 든 고추를 따내며 애서 우스갯소리도 해봤지만, 타들어 가는 속은 달랠 길이 없다. 박씨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고추밭엔 탄저병이, 인근 논은 도열병이 들기 시작했다”며 “입추에 비가 오면 한 해 농사가 망한다더니 그 말이 딱이다”고 했다.

사흘간 최대 500㎜가 넘는 비를 뿌린 수마(水磨)가 전북지역 곳곳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번 비로 시설물 파손 등 잠정 집계된 피해만 800여 건을 넘어섰고, 이재민은 1,700여 명에 달한다.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할 농가는 낙과, 침수 등 피해가 심각해 가을걷이를 앞두고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사흘간 내린 비로 지난 7일부터 9일 오전 10시까지 전북도에 집계된 논 침수 피해는 김제‧남원‧정읍 등 6,973㏊에 이른다. 논 콩‧인삼 등의 밭작물 피해도 1,228㏊에 걸쳐 발생했다. 강처럼 흐른 빗물은 우사와 돈사 등 축사 122호, 11만6,679㎡를 덮치기도 했다. 실제 순창 유등면 한 축사는 섬진강 댐 방류와 집중호우 등 이중고를 한 번에 겪으며 소 10여 마리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안쓰러운 상황을 연출키도 했다. 이 축사 주인은 “빗물이 파도를 이루면서 우사를 덮쳤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 소가 둥둥 떠다니는 걸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비로 인한 상처를 봉합하기도 전에 제5호 태풍 ‘장미’가 북상하면서 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0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최대 300㎜다. 도 관계자는 “피해 신고가 계속 접수되고 있고, 자세한 면적 등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피해 상황파악과 예방,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글·사진=양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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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0-08-1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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