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이념, 계층을 초월해 사랑받는 김시습

소종섭 '영원한 청년 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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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 김시습(지은이 소종섭, 펴낸 곳 한걸음더)'은 김시습 생애 따라가며 사상‧문학‧삶의 궤적을 조명한다.

560여 년 전 이 땅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북으로는 압록강 가 신의주, 남으로는 남해바다 해남에 이르기까지 조선 팔도에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가 현장을 시로 읊었을 때에야 비로소 문화유산은 생명을 얻어 의미가 살아났다.

해가 뜨면 걷고, 해가 지면 썼다. 국토를 답사하며 일생을 길 위에서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가이자 답사가, 최초의 소설가인 그의 이름은 김시습이다. 조선시대에 가장 뜨거운 가슴을 가졌던 그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흠모하는 영원한 청년이다.

당시 대표적 사상가이자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은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에 사서삼경을 읽을 정도로 천재적 재능을 지녔지만, 계유정난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맞으며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뀐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에 분노한 그는 스스로 책을 불태우고 세상과 결별한 뒤 ‘탕유(宕遊)’라는 길 위의 삶을 선택했다. 이는 방랑이 아닌, 백성의 삶과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려는 치열한 실천이었다.

이 책은 김시습의 생애를 출생부터 입적까지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며, 그의 사상과 문학, 삶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특히 전국 팔도를 직접 유람하며 남긴 기록과 시문은 당대 사회와 민중의 삶을 반영한 생생한 역사 자료로 읽힌다. 그는 북쪽 신의주에서 남쪽 해남까지 국토를 종횡하며, 그 여정 속에서 사상과 문학을 동시에 완성해 나갔다.

김시습의 삶은 "해가 뜨면 걷고, 해가 지면 썼다"는 문장으로 압축된다. 560여년 전 김시습은 북으로 압록강, 남으로 남해 해남까지 걸었다. 그가 전국을 시로 읊을 때마다 문화유산이 생명을 얻었다.

1장은 '호탕한 유람'에서는 왕도의 시대가 지나고 패도의 시대가 왔다고 판단한 청년 김시습이 지배층을 떠나 백성이 있는 삶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2장은 관서·관동기행을 중심에 둔다. 신화와 민속을 새로 읽는 시선이 우리 땅과 문화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한다. 유·불·도를 넘나드는 회통 사상의 골간도 이때 형성된다.

3장은 호남·경주기행으로 넘어간다. 김시습이 역사를 시로 읊으며 패도의 시대를 개탄하고, 피폐한 백성의 삶에 공감하는 대목을 짚는다. 관서·관동·호남기행에서의 관심이 '금오신화'로 이어졌다.

주목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김시습의 문학적 위상이다. 그는 ‘금오신화’를 통해 우리 문학사 최초의 한문소설을 남긴 인물이다. 귀신, 용궁, 염라대왕 등 설화적 요소와 역사적 사건을 결합한 이 작품은 한국적 상상력과 현실 인식이 결합된 혁신적 성과로 평가된다. 그동안 절의의 상징으로만 소비되어 온 김시습을 ‘창작자’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김시습을 불교는 물론 유교와 도교까지 아우른 사상가로 조명한다. 특정 사상에 머물지 않고 회통의 시선을 지녔던 그는, 시대의 모순을 직시하면서도 자유로운 정신을 유지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던진다. 권력과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한 그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지은이는 김시습의 발자취를 따라 전국의 사찰과 사당, 시비, 초상화 등을 직접 답사하며 기록했다. 부여 무량사를 비롯해 13곳의 사당, 11곳의 시비, 6곳의 초상화가 상세히 소개되며 사진과 함께 현재의 모습까지 담아냈다. 이는 단순한 전기가 아닌 ‘답사기’로서의 성격을 더해 독자들이 직접 길을 따라가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지은이는 2011년 사단법인 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시사저널과 아시아경제에서 편집국장을 역임한 언론인 소종섭이 60여차례가 넘는 '김시습 답사' 경험을 글로 펴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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