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봉사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때가 되어 인연이 닿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농촌과 해외를 오가며 학생들과 함께 봉사의 현장을 만들어 온 원광대학교 간호대학 김자옥 교수는 자신의 사회봉사 철학을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불교에서 유래한 시절인연은 ‘모든 인연은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김 교수의 삶과 봉사의 여정 역시 그 말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다.
“농활 대신 컴퓨터 동아리…뒤늦게 찾아온 봉사의 인연”
김 교수의 대학 시절은 지금의 봉사활동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1990년대 초 대학가에 처음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동아리는 가장 인기 있는 활동 중 하나였다.
그 역시 ‘메디컴(Medical & Computer)’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 시절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던 농촌활동(농활)은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했다.
“같은 전공을 공부한 제 동생은 ‘필리아(Philia)’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영아일시보호소 봉사와 소록도 봉사를 했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대학생활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된 뒤, 오히려 학생들과 함께 사회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봉사의 인연이 늦게 찾아온 시절인연”이라고 말했다.
“순창 인계면에서 시작된 농촌재능나눔”
본격적인 사회봉사 활동은 2023년 여름 시작됐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 기금으로 진행되는 농촌재능나눔 사업에 참여하면서다.
대학은 먼저 사업 제안서를 제출하고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뒤 2차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최종 선정되면 기금을 지원받는다.
이후 모든 사업 회계는 ‘e-나라도움’ 시스템을 통해 투명하게 관리된다.
2023년 여름에는 7개 학과 80여 명의 학생과 교수가 참여해 이틀 동안 순창군 인계면에서 농촌재능나눔 활동을 펼쳤다.
이듬해인 2024년에는 규모가 더 커졌다.
9개 학과 120여 명이 참여해 3일 동안 전공연계 서비스러닝과 리빙랩 맞춤형 농촌재능나눔을 진행했다.
“조용한 인계면에 이렇게 많은 대학생이 온 적이 처음이라고 주민들이 말씀하시더군요.”
대규모 봉사활동을 마친 뒤 김 교수와 학생들은 주민 만족도 조사와 향후 사업 보완을 위해 다시 마을을 찾았다.
어떤 날은 군에서 숙식을 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며 출퇴근을 하기도 했다.
특히 간호학과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7일간의 2차 농촌재능나눔은 더욱 의미 있었다.
22개 마을을 직접 방문해 감염관리 교육과 치매예방 간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마을을 직접 다녀보니 이장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주신 마을은 많은 주민이 면체육관 행사에 오셨고, 그렇지 못한 곳은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줄 몰랐다’며 아쉬움을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2025년에는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북자원봉사센터 기금으로 완주군 고산면에서 전북청년공익활동이 진행됐다.
이 사업에는 3개 학과 90여 명이 참여했다.
“농촌봉사는 협력 없이는 불가능”
김 교수는 농촌재능나눔 활동을 통해 ‘협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대학은 학생과 교수 인력, 봉사 프로그램 준비, 회계 관리 등을 맡을 수 있지만 농촌 현장을 직접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은 절기에 따라 농사일이 많고 특용작물 재배로 늘 바쁜 일정이 이어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봉사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행정과 중간지원 조직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면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과 농촌 중간지원조직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무더운 여름, 사회봉사 단장을 믿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수해지역 봉사…아픈 마음을 치유하길”
2023년 가을에는 또 다른 상황이 찾아왔다.
태풍으로 인한 수해였다.
지역 농가 피해가 커지면서 대학이 있는 익산도 수해지역으로 선포됐다.
이에 농촌재능나눔 수해지역 사업 보고서를 바탕으로 두 번째 제안서를 제출했고, 사업이 승인됐다.
이 봉사에는 8개 학과 90여 명의 학생과 교수가 참여했다.
김 교수는 여름 봉사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전 홍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학기 수업이 비교적 적은 간호학과 4학년 학생들과 함께 면행정복지센터에서 부스를 설치해 이틀 동안 주민들에게 직접 홍보했다.
또 종교기관과 은행, 사회복지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행사 소식을 알렸다.
“행사 당일 많은 주민이 찾아와 대학생들이 준비한 서비스를 받으셨습니다. 수해로 아픈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기를 바랐습니다.”
라오스·네팔 해외봉사…“단원의 안전이 최우선”
국내 농촌 봉사 경험은 해외봉사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KOICA,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대사협)가 운영하는 WKF 청년봉사단 단장으로 선발됐다.
45기 라오스 봉사단 단장을 맡은 그는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 23명을 이끌고 2주간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현지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유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매일 단원들의 코로나 검사와 인플루엔자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라오스 현지에서 3명의 환자가 발생해 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간호학 전공 교수였던 그는 자연스럽게 단원들의 건강관리 책임을 맡았다.
“해외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원의 안전과 건강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또한 대학 자체 해외봉사 프로그램에서는 예방접종과 해외봉사 보험을 이중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해외봉사는 세계시민 교육”
라오스와 네팔에서의 경험은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남겼다.
김 교수는 해외봉사가 단순히 도움을 주는 활동이 아니라 대학생의 세계시민성과 민주시민성을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수혜국에도 도움이 되지만 우리 학생들에게는 세계를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다만 해외봉사를 보여주기식 활동으로 활용하는 일부 사례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봉사를 하나의 명분 좋은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비양심적인 행동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사회봉사의 핵심은 교육자의 양심”
김 교수는 지난 3년 동안 국내 농촌, 제주도, 그리고 해외 ODA 봉사활동을 이어오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봉사를 하는가.’
‘이 활동이 정말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인가.’
그 이유는 학생들 때문이다.
“사회봉사는 교육자가 얼마나 정성껏 준비하느냐에 따라 교육이 될 수도 있고, 학생들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는 봉사의 핵심을 ‘양심과 철학’이라고 말했다.
“모든 만남은 시절인연”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봉사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봉사를 이어가는 분들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그분들 덕분에 사회는 조금씩 더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또 지난 3년 동안 사회봉사 파트너로 회계 업무를 맡아준 원광보건대학교 사회봉사단과 통합 원광대학교 안전관리과 예비군연대 송창우 대대장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다시 한번 ‘시절인연’을 언급했다.
“사회봉사는 누군가 억지로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때가 되고 인연이 닿으면 자연스럽게 시작됩니다. 저에게 사회봉사는 바로 그 시절인연이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삶.
그 길 위에서 김자옥 교수와 학생들의 봉사는 오늘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있다.
/서울=정종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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