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봄날의 짧은 단상(斷想)

이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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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이 지나고, 우수(雨水) 경칩(驚蟄)도 지났건만 봄바람은 품속에 파고들어 몸을 움츠리게 한다. 그러나 달빛 풀어놓은 저 은은한 지상에선 파릇한 새싹이 완연한 봄을 기다린다. 달집 태운 불티가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그 자리, 이미 봄은 와 있었다. 아내는 나물국으로 봄의 소식 전하는데, 아련히 펼쳐지는 봄의 향연은 평화로운 생(生)의 여운(餘韻)같이 펼쳐진다.

곧 모양성 개나리꽃 화사하게 깔깔 대면, 객사 앞에 목련 꽃 소복 차림으로 우아한 자태 자랑할 것이다. 벌써 작청(作廳) 앞 매화가 창공에 수묵화(水墨畵)를 그리고, 이제 곧 공북루(拱北樓) 양옆으로 만발한 벚꽃이 꽃비를 내리면, 봄을 보내는 뻐꾸기 울음에 동리정사의 태산목이며 층층이 나무도 꽃을 피우리라.

비 한 번 올 때마다 봄은 더욱 가까이 오는데, 나는 아직 그 길고도 모질게 추웠던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고, 마음의 새싹도 틔우지 못한다. 봄꽃 떨어진 자리에 은은한 연초록의 꿈, 꽃샘바람은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옛말을 무색케 한다.

여든 중반 두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마을회관에 들어가 겨울 섞인 봄 속에서 완연한 봄을 기다린다. 두 할머니들에겐 아직도 얼마나 긴 겨울이 남아있는 걸까? 사람마다 다른 인생 다른 계절의 깊이를 생각할 때 마음이 허허롭다.

기다리는 봄. 기다림 속에는 물러나는 과거와 다가오는 미래가 동시에 공존하는데, 나는 해마다 그 어떤 준비도 없이 마냥 봄만을 기다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제였던가! 연초록 가지에 희망의 등불을 달은 때가. 마디마디 꽃으로 장식한 채 아지랑이 아롱대는 언덕에 누워 청운의 꿈을 노래한 때가!

얼어붙은 땅에 따스한 햇살로 물기 흐르고, 산골마다 가득한 운무는 생명을 움트게 한, 분명 그러한 세월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만물을 소생시키는 그 은근함과 정갈함, 그것이 바로 신이 주는 봄, 나에게 내린 대자연의 섭리였음을 자각한 때가 있었던 것이다.

봄은 울긋불긋 휘황찬란한 색깔로 산과 들을 수놓듯 내 인생의 봄도 그러했으리라. 치레하지 않는 저마다의 고유의 색깔, 멀리서 보면 초록의 봄이며, 티끌 없는 하늘, 침묵 속의 생명이며 희망이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며 우주와 생명이 영원에 닿아 있다. 연약한 듯하여도 겨우내 묻은 때와 얼룩을 씻어 내어 맑은 초록의 세상도 만들어 낸다.

인생의 봄은 달밤에 싹을 틔우고 낮에는 햇볕에 자라게 한다. 봄의 노래는 받아보지 못한 꽃다발이며 아쉬움이고 그리움이다. 이젠 실루엣으로 떠올라 허공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여인이다. 한아름 꽃다발을 안고 사뿐사뿐 푸른 잔디를 밟으며 걸어오는 환상의 여인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봄은 나를 키워왔고, 가슴 아린 추억도 만들어 주었다. 친구도 되어 주었고 가르침도 주었다. 봄의 창공에 무한의 희망을 주었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봄을 더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과거나 미래는 현재가 있어 존재한다. 현재 이 봄의 행복, 맑고도 고요하게 봄 속에 마음을 두자. 지상(地上)이니 천상(天上)이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수많은 찰나가 쌓여 영원이 되어 간다. 더는 아쉬워할 것도 별로 없으면서 내려놓지 못하는 나, 집착하지 말자. 비록 그것이 말뿐일지라도, 집착하지 않으려는 그 순간만이라도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상태를 유지해보자. 그리하여 새로운 내 삶의 발견과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해보자. 번개처럼 지나가는 이 봄일지라도.



이명철 수필가는



한국문협회원. 전북문협 회원. 고창문협 회원 (현)모양수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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