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언어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표현하곤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의사 표현 능력이 없는 돼지를 ‘말 못 하는 짐승’이라 치부하지만, 실제로 돼지는 조용하지 않다. 배가 고프면 사료통 주변을 서성이고, 추우면 서로의 몸을 밀착하며, 위협을 느끼면 격렬한 소리와 함께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새끼돼지가 어미에게 눌릴 때 내는 날카로운 비명이나 사료 급이 시간에 돈사를 가득 채우는 소리 역시 그들만의 의사표현이다. 나아가 모돈은 자돈에게 젖을 물릴 때 특유의 낮고 반복적인 소리로 교감하기도 한다. 돼지에게 소리와 행동은 곧 그들의 언어인 셈이다.
비록 특정한 하나의 행동만으로 돼지의 상태를 즉각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몸짓과 소리는 현재 환경이 쾌적한지, 혹은 견디기 힘든 상태인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사람이 24시간 직접 관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백, 수천 마리를 사육하는 현대 축산 환경에서 관리자가 돈사를 살피는 시간은 하루 중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사회적 동물인 돼지의 특성상 개체 간 서열다툼으로 인한 부상이나 질병이 예기치 않게 발생하며, 발견이 지연될수록 피해는 커진다.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축산 현장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관리자의 눈과 귀를 대신하고 있다.
청각 기반 분석 기술은 돼지의 비명이나 기침 소리를 주파수와 음향 패턴으로 분석해 이상 징후를 감지한다. 이미 국내외 농가에 보급된 기침 소리 분석 시스템은 그것이 단순한 환경 요인에 의한 소음인지, 혹은 질병에 의한 신호인지를 구분해 관리자에게 적절한 대응을 요청한다. 최근에는 수천 건의 소리 데이터를 학습시켜 놀이나 포유 시 나타나는 비교적 안정적인 소리와 고통·공포 상황에서 나타나는 고주파 비명을 구분하려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영상 기반 분석 기술은 24시간 쉬지 않는 ‘디지털 관리자’의 역할을 한다. 카메라로 수집한 영상을 분석해 활동량, 자세 변화, 사료 섭취 행동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장시간 움직이지 않거나 급격히 활동이 줄어드는 개체를 자동으로 탐지한다. 분만사에서는 모돈의 움직임을 추적해 분만 징후를 감지하거나, 비접촉 방식으로 체중 변화를 추정해 최적의 출하 시기를 예측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최근의 인공지능(AI) 연구는 질병 탐지나 사고 예방을 넘어 ‘복지 향상’으로 방향을 넓히고 있다. 유럽에서는 개체 간 상호작용과 꼬리 위치 변화를 분석해 꼬리 물기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 더 나아가 돼지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에서만 나타나는 특유의 놀이 행동이나 안정적인 휴식 패턴을 데이터화해 사육 환경의 복지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동물복지를 단순히 ‘고통이 없는 상태’로 보지 않는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역시 동물복지를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긍정적 상태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이제 기술의 역할도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돼지가 얼마나 편안한지까지 데이터로 확인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인공지능(AI)은 도구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 돼지의 소리와 움직임을 읽어낸다 해도, 그 신호를 해석하고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기술을 현장에 맞게 활용할 때 비로소 스마트 축산은 복지로 완성된다. 이제는 돼지의 언어를 데이터로 읽고, 그 데이터를 다시 ‘따뜻한 관리’로 연결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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