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창군이 17일부터 다음달 26일까지 옥천골미술관과 섬진강미술관에서 한국 자연주의 회화의 거장 고 박남재 화백과 이세하 작가의 사제동행전 ‘기억의 공명, 선율의 흔적’을 갖는다.
이는 두 공립미술관이 동시에 개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스승과 제자가 예술적 정신을 공유하며 이어온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 기획전이다.
전시는 스승과 제자의 예술 세계가 서로 공명하며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리로, 한국 회화의 정신적 계승과 확장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
섬진강미술관에서는 박화백의 작품을 중심으로 자연주의 회화의 깊이 있는 세계를 소개하고, 옥천골미술관에서는 이작가의 작품과 함께 두 작가의 작품이 서로 공명하는 사제전 공간이 마련된다.
박화백은 자연을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로 바라보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해 온 한국 자연주의 회화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의 시선 아래 놓인 배경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력을 지닌 주체로 등장하며, 대지와 하늘, 산과 바다의 에너지가 강렬한 색채와 힘 있는 붓질을 통해 화면 위에 살아 움직인다.
반면 이세하 작가는 음악적 구조에서 발견되는 하모니를 조형 언어로 변환하여 자연과 생명,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회화를 선보여 왔다. 작가는 클래식 음악에서 나타나는 구조와 리듬을 화면 속 조형 요소로 전환하며, 자연과 생명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의 질서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바이올린과 더블베이스 등 현악기의 구조적 요소들은 작가의 화면에서 중요한 조형적 모티프로 등장한다.
박화백의 작품은 깊은 색채와 두터운 마티에르, 거침없는 필치는 자연이 품고 있는 생명의 힘과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형성한다. 작가가 길어 올린 붉은 대지와 짙은 하늘의 색채는 단순한 풍경의 묘사를 넘어 자연의 본질적인 에너지와 존재의 울림을 담아낸다.
붉은 색조와 힘 있는 터치로 가을 산의 생명력을 표현한 ‘지리산의 가을’은 장엄한 산세와 계절의 변화가 지닌 에너지를 강렬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굵고 시원한 붓질로 거친 파도의 흐름을 표현한 ‘부안군항’은 자연 풍경이 지닌 역동적인 리듬과 생명력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연대 미상의 ‘무제’는 거의 공개가 안된 작품이다. 나무 사이 저 멀리 산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품들은 자연을 살아 있는 생명의 세계로 바라본 박화백의 예술적 시선을 잘 보여준다. 그는 ‘대담한 원색의 붓질로 자연의 강렬한 리얼리티를 포착해 독창적인 색감과 표현력으로 구상화의 길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리산, 강천산 등을 답사하면서 그려낸 풍경들은 풋풋한 흙내음과 건조한 공기, 맑고 쨍한 하늘, 흙벽과 밭고랑, 그리고 잡목들의 산뜻한 대비 속에 섬세함과 세련미가 융숭한 까닭에 농익은 창작혼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전주 중인동의 아리따운 복숭아꽃, 가을 정취를 물씬 풍겨주는 대둔산 계곡, 은백의 설원이 펼쳐진 운장산의 겨울, 변화무쌍한 노을 등 한국의 사계가 이처럼 화면을 압도한다. 때문에 작가의 캔버스엔 우리네 산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일출의 휘황, 낙조의 애수, 사계의 질서가 한데 어우러지고 전진과 후퇴, 영예와 치욕, 환희와 비애의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밀어를 속삭인다. 네모 난 캔버스에 일렁이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넘쳐나는 작가의 청정 도량이요, 마음의 텃밭이다. 꿈을 담는 든든한 그림 수레에 다름 아니다. 가슴에 일체를 어우르는 맑을 사, 코발트빛 하늘 한 점 한 점을 들여 놓기 위한 살붙이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그려왔다.
그는 1929년 순창읍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4학년까지 고향에 살다 서울로 전학을 갔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들어갔지만 입학 몇 달 만에 한국전쟁이 나면서 학업을 중도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빨치산 대장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에 들어가 1년간 회문산과 지리산ㆍ운장산 등지에서 활동했다. 국군에 붙잡혀 끌려간 광주포로수용소에서 서양화가 오지호 화백을 만난 인연도 그렇고 그림이 운명이었던 같다. 오화백의 지도로 조선대 미술학과를 졸업했고 전주여고ㆍ전주고 등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가 원광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미대 학장을 지내가가 1998년에 퇴임했다.
자연의 생명성과 존재의 깊이를 탐구해 온 스승의 예술 세계는 제자인 이세하 작가의 작업에도 중요한 정신적 토대가 됐다.
이세하 작가는 ‘노인과 바다’ 속 청새치의 형상이 현악기의 브리지와 활의 구조로 변환되는 작품에서는 자연의 생명성과 음악적 구조가 하나의 이미지로 결합된다.
또, 대형 회화 작품에서는 브리지 형태가 반복과 변형을 거듭하며 화면 전체를 구성해, 언뜻 비구상 회화처럼 보이면서도 음악적 리듬과 구조를 내포한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만들어낸다.
작가의 작품은 음악적 하모니의 구조를 빌려 자연과 생명, 그리고 존재의 관계가 이루는 조화를 탐구하며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적 사유를 제시한다.
작가는 회화에 오브제를 더하고, 그리고 조각과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물감은 물론이고, 돌, 나무 등의 자연물질들을 융합하여 장르를 뛰어넘는 거침없는 변화는 오랜 세월 서양고전음악에 심취된 내면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용출되는 자화상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에 들어오는 다양한 소재와 형식과 내용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우주의 질서와 인류의 조화로움을 표현한다.
작가는 "모차르트, 멘델스존, 슈베르트 등의 서양 고전 음악가들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의 문학이 나의 작업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통해 나의 작품세계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관철시키고 싶다"고 했다.
‘Harmony-떨림’ 환희, 두려움, 흥분, 긴장 등이 주는 ‘떨림’은 음악과 자연의, 음악과 과학의, 음악과 작가의 삶을 조화롭게 이끌어 준다. 변화무쌍한 바다를 향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노를 젓듯, 붓질을 하고 톱질을 하고, 피스를 박고, 색실을 바이올린에 끼우며 완성될 작업이 가까워 올수록 설레임에 떨린다.
시나브로, 작가는 물감을 칠하고, 벗겨내고, 나무토막을 세우고 허물고 눕히고 일으키며 새로운 미술 장르의 벽을 무너뜨려 흥미로운 작업의 또 다른 ‘떨림’을 경험한다. 그 속엔 항상 바이올린 선율이 함께하고, 바이올린은 작가에게 따뜻한 위로이며, 삶이 행복한 이유이다.
작가는 부안 출신으로, 원광대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으며 서울, 대전, 전주, 익산 등지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갖고 있다.
17일 두 공간에서 진행되는 전시 오프닝 행사는 오전 10시 기획전시실의 박화백 오프닝을 시작으로, 오후 3시 본관 이작가의 오프닝으로 이어진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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