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봄이 왔다. 봄날은 사전에 ‘봄철의 날’이라 쓰여있다. 그러나 떠오르게 하는 낱말들이 더 수두룩하다. 새싹, 젊음, 생동감, 새로움, 힘찬 기운, 꽃, 아름다움, 따스함, 행복 등 미처 나열하지 못한 기분 좋은 말이 더 많다. 물론 나른함이나 춘곤증 같은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낱말도 따지고 보면 나쁘지만은 않다. 겨우내 언 몸과 마음이 따스해진 현상이라서 그렇다. 봄은 자연 이치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런데도 해마다 여러 좋은 의미를 갖다 붙여서 기다린다. 봄이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1894년 봄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그때도 봄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낱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했다. 그 봄에도 꽃이 피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은 화사하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꽃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볼 수가 없었다.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먹어야 했다. 먹거리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맸다. 그래도 얼굴은, 퉁퉁 부었다. 흰자위 눈동자가 노래졌다. 영양실조가 그리 만들었다. 하루하루를 죽을힘을 다해 살아낼 뿐이다.
물론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매관매직의 폐해가 있다. 당시 고부군은 물산이 가장 풍부했다. 고부군수 자리는 노른자위였다. 고관대작이 자기 휘하를 앉히려 쟁탈전을 벌일 정도였다. 고부군수직은 축재의 수단이었다. 고부군수직뿐만 아니었다. 전라도 대부분 고을은 물산이 풍부했다. 그야말로 매관매직하기에 그만이었다. 권력자로서는 질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를테면 돈으로 관직을 꿰찬 고을 수령은 탐관오리가 되어야만 했다. 권력자의 눈치를 봐야 하고 더 좋은 자리를 옮겨가야 하므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야 했다. 탐관오리는 사나워야만 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저항하거나 고발이라도 하면 오히려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모두 한통속이 되어 수탈을 일삼았다. 구실아치도 덩달아 날뛰었다. 이처럼 매관매직은 단순하지 않다.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추종하는 세력조차도 탐관오리의 아류가 된다. 때론 권세를 등에 업고, 때론 암약하여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편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수탈을 일삼았다. 그래서 죽음을 무릅썼다. 꽃구경 대신 죽창을 들었다. 그저 살기 위해 가렴주구에 맞섰다.
한때 첨단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었던 선진 지역이 있다. 요즈음의 형편은 딴판이다. 소득이 가장 낮은 낙후지역이다. 대통령을 연이어 만든 정치적 힘으로 사양산업에 자금을 쏟아붓게 했다.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생 불능 산업이 되었다. 그 많은 지원금은 기득권 소수만의 배를 채웠다. 그 결과 지역민의 소득은 전국 꼴찌가 되었다. 그래도 그 소수는 지금도 떵떵거린다.
이제 지방선거가 3달여가 남았다. 지방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다. 주민 삶에 직결된다. 만약 현대판 매관매직의 마법이 통한다면, 합법을 가장한 사적 탐욕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측근들은 온갖 이권에 음으로 양으로 개입할 것이다. 다리가 없는데도 다리를 놓고, 산으로 배도 띄울 것이며 white elephant(터무니없이 큰 건물 ex. 청도 버스 터미널사업/대구MBC 뉴스)도 지을 것이다. 흙탕물로는 결코 흐린 물을 정화 할 수 없다.
며칠 전, 대통령 주재 군산 타운홀 미팅이 있었다. 모두 발언에서 동학 교리인 ‘사람이 하늘이다’와 자신의 정치철학 ‘대동세상’을 전북과의 인연으로 규정했다. 필자는 비록 확장적이기는 하나, 현대판 매관매직 즉, 돈 공천, 밀실 공천 그리고 부정한 선거의 근절을 강조하는 발언으로도 해석한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항일 의병활동, 3.1만세운동, 독립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빛의 혁명이 되었다. 전북은 민주주의의 성지다. 근대화의 시원지이다. 이 땅에서만큼은 현대판 매관매직이 단호히 배척되어야 한다. 주민이 나서서 막아내야 한다. 아주 자그마한 조짐조차도 용납하면 안 된다.
그래야만 1894년 봄이 아닌, 2026년 희망의 봄을 만날 수가 있다. /소설가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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