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미래]한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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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들이 ‘영어로 일하기’를 소통의 원칙으로 한다고 한다. 삼성과 현대는 물론이려니와 웬만한 중소기업까지 영어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는 보도다. 영어로 일하기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은 당장의 효율성을 올려줄지는 모르지만,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경제에 예속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현대판 매판자본인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직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참고할 수 있는 과거 이야기가 있다. 1945년 이후, 승전국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복구를 도왔다. 과학기술을 이전 시켜준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핵폭탄으로 일본을 누른 자신감이었다. 일본은 꾸준히 과학기술 연구와 개발에 국력을 기울였다. 그 수준이 미국을 능가할 정도가 되니, 미국이 다시 요구하였다. 일본이 개발한 과학기술 목록을 미국에게 제공하라는 것이다. 그때 일본은 그 목록을 일본어로 제출하였다. 일부러 일본어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일본말로 작업하였던 결과다. 미국은 그 목록을 풀기 위해 일본어를 알아야 했다. 과학일본어라는 말은 여기서 만들어졌다. 당시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자연계, 이공계 학생들에게 과학일본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또 중국 사람들은 외국어를 자기 나라말로 의역하여 사용한다. 그러려면 외국어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말과 문화에 관한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 또 다른 나라의 기술과 상품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 일등을 가는 정신적 기반이 이것이다. 이웃 두 나라와 미국과 유럽, 러시아를 이기려면 ‘한글경제’를 운용해야 한다. ‘한글경제’는 주권적인 학문 탐구, 과학기술 발전, 기업의 주권적 발전 전략을 포괄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학문 용어, 과학기술 용어와 상품의 이름까지 자기 나라말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라의 주권과 줏대가 바로 서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나라의 학문과 과학기술이 한 단계 높이 올라 세계적 차원의 원천 학문, 원천 기술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것이 인문학의 기초다.

세계 정치-경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덩치 큰 나라에 의존해야만 나라를 지탱할 수 있다는 사대주의 발상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 세계 질서가 바뀌고 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국제법도 필요 없다는 태도로 야만적 패권주의를 행동에 옮기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미국 마음대로 세계 질서를 휘두를 수 있다고 공언한다. 중국은 미국 일극 체제를 부정하며 중국식 패권주의로 맞서고 있다. 미국에 맞설 만큼의 과학 기술력과 경제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하며 세계 질서를 흔든다. 전쟁하는 이스라엘도 질서를 흔드는 중심이다. 여기에 유럽 국가들은 일치된 힘을 모으지 못하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인도는 패권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중 아닌가? 미국과 중국의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자는 ‘티 25(T25)’의 25개 국가도 있다. 한마디로 미국 일극 체제에서 새로운 형태의 다극 체제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국제정치의 다극 체제에서 우리나라가 하나의 중심이 되는 중추 국가로 자리 잡지 않으면 국가 주권을 제대로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중추 국가가 되려면 하루빨리 지적 식민지 상태를 탈출해야 한다. 독자적인 철학과 역사관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다급한 것은 과학기술이 앞서 나가야 한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11대 분야 핵심 과학기술 수준에서 미국에 2.8년 뒤떨어지고 있다. 유럽과 중국, 일본에도 뒤지고 있다. 과학기술 수준에서 미국을 추월해야만 중추 국가로 될 수 있다. 이것을 국가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학자와 지식인, 정치인과 정부, 기술인과 기업가들이 한글 정신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주권적으로 서야 할 때이다. 대중문화를 넘어서 ‘철학한글’, ‘과학한글’, ‘기술한글’, ‘한국형 기업’, ‘한국형 경제’, ‘한국형 대학’이라는 고차원의 한류를 일으켜야 할 때다./김도종 • (사)한국 소프트웨어 기술인협회 이사장. (전) 원광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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