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한국 대중음악은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에서 ‘K-Pop 현상’을 실질적으로 견인하고 있다. 최근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삽입곡 ‘Golden’이 2026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오리지널 송’(Best Original Song) 부문을 수상하였다. 또한, BTS는 멤버들의 병역 의무 이행을 마치고 완전체 활동 재개를 공식화하며, 새 앨범과 공연을 둘러싼 국내외 기대를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 음악의 성취가 눈부실수록, 자연스럽게 하나의 역사적·학술적 질문이 제기된다. 한국 음악이 서양에서 최초로 음반의‘기록매체’에 녹음된 시점은 언제인가?
학계에서 주목해온 사례는 크게 두 갈래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1896년 7월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의 실린더 녹음이다. 민족지학자 앨리스 커닝햄 플레처(Alice Cunningham Fletcher)가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들의 노래를 에디슨 원통(실린더) 방식으로 채록했다는 연구가 있다. 안정식(Ahn Jeong-sik)·이희철(Lee Hee-Cheol)·손롱(Son Rong) 등 세 명의 유학생이 부른 여섯 곡이 녹음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아리랑’과 ‘달 노래’ 등 전통 민요가 포함된 것으로 전한다. 특히 해당 음원이 미국 Library of Congress 산하 American Folklife Center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기록이 단순한 개인 채록을 넘어 공적 아카이브의 ‘문화유산’으로 한국의 음악사에 매우 중요한 사례를 남겼다.
둘째는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World’s Columbian Exposition)와 관련된 흐름이다. 조선 후기 고종은 시카고 박람회가 조선을 독립국으로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여겨 대표단을 파견했다. 『고종실록』에는 1893년(고종 30년) 음력 1월 24일, 정경원(鄭敬源)을 “박람회 출품사무대원”으로 임명하였으며, 대표단으로 행정사무원 최문현(崔文鉉), 통역사 안기선(安琪善), 장악원(掌樂院) 악사 10명 등 총 13명 규모로 편성되었다.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해 일본 요코하마를 경유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한 뒤, 장거리 여행 끝에 개막식(5월 1일, 양력) 3일 전인 4월 28일 시카고에 도착했다.
박람회 현장에 조선은 한옥 양식의 전시관을 조성하고, 가마·찬장·식기·신발·화로·자수 병풍·조총·관복과 무인복·악기 등을 전시했다. 이 파견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대조선(ᄃᆡ죠션)’이라는 국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주권 국가로서의 존재를 국제 무대에서 공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이다. 기록에 따르면 9월 18일 조선 대표단은 미국 내 각국 대표를 초청하는 행사를 진행했고, 일부 사진과 초청장도 전해지고 있다. 이는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이전에 국제법적 질서 속 ‘독립국’의 정체성을 외교적 방식으로 가시화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전통음악 연주와 물품 전시를 통해 한국 문화를 세계에 공적으로 소개한 문화교류의 장이 되었다. 장악원 국악연주단 일행은 5월 1일 개막식에 22대·24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클리블랜드가 전시관을 지나갈 때 풍악을 울렸다. 당시 시카고 현지신문(The Chicago Evening Journal)은 우리의 전통음악 연주에 대해 독특한 관악기와 현악기로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정경원이 귀국 후 고종에게 “각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물품을 처음 보기 때문에 구경하는 사람이 번잡하게 모여들어 미처 응대할 겨를이 없었다”라고 보고하였다. 또한, 경기명창으로 알려진 박춘재(朴春載)가 미국 현지에서 레코드 취입을 하고, 귀국 후 납판녹음기로 재생해 고종과 대신들을 놀라게 했다는 내용이 전한다.(『고종실록』,고종 30년 11월 9일 기사) 『고종실록』과 정경원의 일기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19세기 말 한국 음악이 서양의 녹음 기술과 시카고 세계박람회라는 무대에서 ‘기록’과 ‘전시’로 처음 접속한 역사와 맞물려 있듯이, 오늘날 세계적 무대에서 크게 환영받는 K-Pop은 세계가 공유하는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한국음악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박광수 원광대학교 명예교수(K-전통문화학술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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