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대한민국 사회를 ‘공간’으로 진단한다

강미현, '존엄하고 초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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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고 초라한(지은이 강미현, 펴낸 곳 흠영)'은 공존을 생각하는 건축사 강미현의 도시 인권 에세이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을 공간의 관점에서 진단하는 책이다. 모든 건축과 도시설계의 출발점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차별 없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실현하기 위한 건축사의 제안을 담았다.

주거불안의 고착화, 초고령사회 진입, 1인 가구 증가, 장애아동 인구의 증가, 이주민 수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사회가 점점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2026년 현재, 연대와 공존이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이 책은 34편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시대적 화두를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하고, 익숙한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배제의 문법을 해체하며 공존을 위한 연대를 꾀한다.

건축과 도시환경에 관심이 있는 독자뿐 아니라 2026년 한국 사회를 읽고 싶은 독자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입시라는 닫힌 공간을 벗어나 대학과 사회라는 광활한 도시로 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주거, 노동, 장애, 교육, 공존을 주제로 한 다섯 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존재의 보금자리'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쾌적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주거기본법' 제2조)가 실제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따져보고, 2부 '노동의 자리'에서는 일터에서 위험을 감당하는 일이 왜 여전히 노동자 개인의 숙명이 되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어 3부 '모두를 위한 공간은 없다'에서는 장애인들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일상에 도달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4부 '교실의 배신'에서는 모든 아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교실과 학생들을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공간에 대해 말한다. 5부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에서는 도시 생태 회복과 동물과의 공존 문제를 공간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이 책의 매력은 공간으로써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들을 진단하는 데 있어 역사적 맥락을 함께 들려준다는 것이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반지하주택에 살게 된 배경과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역사,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연유, 노동자의 쉴 권리가 명문화되기까지의 과정,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배경, 오늘날 기숙사의 뿌리가 된 중세 수도원 등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오늘날 사회문제를 한층 더 깊이 있고 흥미롭게 이해하게 만들게 한다.

나아가 '존엄하고 초라한'은 집을 핵심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유독 강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관점을 전환하여, ‘삶의 기반’이라는 집의 본질과 주거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또,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권리, 올바른 일터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게 하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환대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확장하도록 돕는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존엄한 개인으로서 사회에 정당한 환경을 요구할 수 있는 비판적 지성을 길러주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할 터이다.

책 속엔 실제 우리 이웃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휠체어를 타는 승권 씨와 해선 씨, 영구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주현 씨, 18년간 보육원에서 생활한 도현 씨, 창고를 휴게실 삼아 도시락을 펼치는 청소 노동자, 마음껏 떠들 권리를 잃어버린 어린이들, 고시원으로 향하는 수많은 청년들…….

지은이는 일상적인 공간이 어떻게 특정한 이들을 배제해 왔는지를 추적하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고발한다. 단, 그렇다고 피해자의 서사만 반복적으로 드러낸다거나 제도를 비판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또, 공간과 건축이 차별을 고착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도구 역시 공간과 건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독자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이 책이 주는 재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공존을 실현하고자 하는 각국의 노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소셜 믹스(social mix)를 실현한 프랑스의 사회주택 제도, 시설 중심에서 벗어나 고령층에 대한 새로운 돌봄 사례를 만든 일본의 ‘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 이른바 라이더법을 제정해 배달 라이더의 직접 고용을 의무화한 에스파냐, 노숙인에 대한 현금 지원 정책의 효과를 검증한 캐나다, 모든 이용자가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의 표상 핀란드의 오디(Oodi) 도서관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선진적인 사례들은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도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30여 년 동안 건축 현장에서 일해온 저자는 건축과 도시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을 부탁한다. 모두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동안의 과오를 분명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하면서.

지은이는 공존을 고민하는 건축사. 좋은 건축은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도시를 품격 있는 문화공간으로 바꾼다고 믿고, 시대의 정신과 지역의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의 요구를 담아내는 공간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현재 건축사 사무소 예감을 운영하고 있으며, 원광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오랫동안 '새전북신문'에 건축 이야기를 연재했고, 초보 건축주에게 후회 없는 집 짓기 방법을 알려주는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를 썼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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