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주주의 안착 넘어 한반도 평화의 돌베개 된 전민동의 파수꾼"

<새전북이 만난 사람 – 전북민주동우회 최규엽 회장 단독 인터뷰> 460회 월례모임 기록한 '전민동'의 저력, 이제는 전북 정치 공천 개혁과 평화통일에 집중 고3 유신 반대 데모부터 '전민동' 회장까지...최규엽이 걷는 ‘견위수명’의 길 ​“돈 벌려고 정치하려거든 그만둬라…정당민주주의 실현이 한국 정치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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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이자 노동운동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한길을 걸어온 최규엽 회장.

그는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전민동의 새로운 돛을 올렸다.

유신 독재에 맞섰던 고교생 투사가 이제는 ‘정당민주주의의 올바른 실현’을 외치는 백전노장이 되어 우리 앞에 섰다.



​Q. 회장님께서는 고교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셨습니다.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선포는 제 인생의 변곡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것을 보고 고3 입시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나라의 위태로움에 목숨을 바친다’는 견위수명의 자세로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대학 입학 후에도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두 번의 제적을 당했고, 광주학살 저항과 노동운동 현장에서 세 번의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민중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겠다는 제 신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Q. 화려한 경력 속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의외의 시기로 꼽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1981년 두 번째 제적 이후 ‘잉꼬법랑’이라는 회사에서 막노동자로 일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던 때입니다. 일당 1,630원을 받으며 몸은 힘들었지만, 동료 노동자들에게 제가 가진 전부를 줄 수 있었기에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습니다. 육체적 생명은 유한하지만, 민중과 함께하는 정치·사회적 생명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그때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집단지성은 반드시 역사를 진보하게 합니다. 트럼프 같은 인물의 등장으로 세계가 후퇴하는 듯 보여도, 결국 인류는 자유와 평등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Q. 최근 한국 정치를 향해 매우 매서운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특히 ‘공천’ 문제를 지적하셨는데요.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출세나 돈을 목적으로 정치를 하려거든 시작도 하지 마십시오. 지금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공천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당 지도부가 컷오프 권한을 휘두르고, 지역 위원장이 공천권을 독점하는 폐쇄적인 구조가 뇌물을 부르는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정당민주주의의 올바른 실현 없이는 한국 정치의 발전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특히 ‘공천이 곧 당선’인 전북에서는 유권자의 수준이 정치인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마음으로 도민들이 깨어나 감시하고 견제해야 합니다.”



Q. 전북의 인구가 일제강점기보다 적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짚어주셨습니다. 해결책이 있을까요?

​“전북은 그동안 총리를 비롯한 쟁쟁한 정치인을 배출했지만, 새만금 같은 숙원 사업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도민들이 직접 일어나야 합니다. 공천 과정에서 당 지도부의 자의적인 컷오프를 폐지하고, 당원과 주민의 참여 비율을 7대 3 정도로 조정해 유권자의 목소리를 대폭 반영하는 개혁이 시급합니다. 전민동은 앞으로 지역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정치인들을 매섭게 감시하고, 진짜 일할 줄 아는 후보를 선별하는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Q. 2026년 1월, 전민동 내에 ‘평화통일위원회’를 신설하셨습니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제 K-민주주의는 승리했고 안착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전민동은 이제 민주화 운동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닦는 일에 전력투구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평화통일위원회를 신설하고 장인선 위원장을 선임했습니다.

41년 동안 한 달도 쉬지 않고 공부하며 투쟁해 온 우리의 저력으로, 고향 전북을 지키고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여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최규엽 회장의 목소리에는 서슬 퍼런 투사의 기개와 고향 전북을 향한 애잔한 연민이 공존했다. “민중과 함께 살다 죽겠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41년을 버텨온 전민동의 깃발이 왜 여전히 꼿꼿한지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전북민주동우회는 어떤 단체인가?



'호남 민주주의의 굳건한 돌베개'



‘전북민주동우회(전민동)’



​전북민주동우회(약칭 전민동)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좌절 이후, 전북 출신 민주화 운동가들이 느꼈던 통한과 고향의 민주화 운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태동했다.

1982년

정동익(전 4월 혁명회 상임의장), 소병훈( 민주당 국회의원),권형택(전 민주헌법쟁위국민운동본부 청년학생공동위원회 공동의장등 전북 출신 활동가들의 논의를 시작으로, 1984년 5월 12일 한승헌 변호사와 고은 시인 등 1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정동익 의장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하며 41년 역사의 첫발을 뗐다.



백현기(전한겨레신문 미주지사장), 전재주(전외환은행노조동조합 부위원장) 한긍수(전북교육청 정책국장),윤석인(희망제작소 이사장), 윤승룡( 남서울대학교 총장)등 전북출신 민주화운동가들도 한마음이 됐다.



이와 함께 사상계의 묵제 기세춘선생과 장준하선양사업회 김주태회장,정치권의 장영달 전의원, 정동영 현 통일부장관, 소병훈국회의원등과 교육계의 조희연전서울시교육감, 정근식현서울시교육감, 문화계의 임진택 명창 등 전민동을 거쳐 간 수많은 인재는 한국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전민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굵직한 변곡점마다 늘 현장에 있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투쟁부터 김대중 후보 후원금 모금, 박근혜 탄핵 투쟁, 그리고 최근의 윤석열 파면 투쟁에 이르기까지 전민동의 깃발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특히 1984년 창립 이후 매월 첫 번째 수요일에 열리는 월례 모임은 41년 동안 단 한 번의 결항 없이 460회(2026년 2월 기준)를 이어오며, 단순한 친목을 넘어 진보적 강연과 토론이 살아있는 ‘공부하는 조직’의 표본이 됐다.

이제 전민동은 안착한 K-민주주의를 넘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 기반 조성을 위해 ‘평화통일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새로운 시대적 소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명실상부한 한국민주주의 '주춧돌'이다.

/서울=정종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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