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에 전주 서고사와 익산 제석사 유물을 만난다

국립전주박물관 ‘전주 서고사 나한상’ 특별전, 국립익산박물관 ‘백제 원찰, 제석사’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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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은 9월 15일부터 11월 29일까지 ‘전주 서고사 나한상’ 특별전을, 국립익산박물관은 오는 11월 9일부터 내년 2월 7일까지 ‘백제 원찰, 제석사’ 특별전을 갖는다.

전국 국립박물관들의 주요 불교 관련 전시 일정이 공개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6월 16일부터 10월 11일까지 ‘황룡사 목탑 사리장엄구’ 특별전을 개최하며 신라 고분 출토품과 불교미술유산을 소개하는 국외 전시도 진행한다. 국립춘천박물관은 11월 중 상설전 ‘강원의 통일신라’ 열고 염거화상탑지 등 강원 지역의 통일신라 불교문화유산들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전주시 덕진구 서고사(西固寺) 16나한상은 2004년 7월경 도난됐다. 2014년 일부가 경매로 나왔고 도난문화재로 압수돼 8점은 서고사에 4점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이 위탁하고 있다. 12점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다. 환수를 위한 노력 끝에 나머지 4점도 2023년 9월 되찾았다.

조성기에 의하면 1695년 5월23일 고창군 흥덕면에 사는 문만영이 시주하고 수화승 성심(性沈)을 비롯, 체원, 민성, 성인, 진열 등 8명의 조각승이 가섭·아난존자와 십육나한상을 조성했다. 당시 조성된 16나한상은 전체가 남아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목조로 제작된 16나한상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예다.

2004년 도난당했던 전주 서고사 16나한상이 4점이 제자리를 찾았다. 금산사 성보박물관은 지난해 10월 17일 서고사 16나한상이 모두 회수되었다고 밝혔다.

익산 제석사지(사적)는 백제 무왕이 수도를 왕궁평으로 옮기려고 지은 궁궐 근처에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중심 불상으로 모신 절이 있던 자리이다.

제석사(帝釋寺)는 백제 무왕이 도읍을 익산으로 옮길 계획을 추진하면서 왕궁 부근에 창건한 절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정관(貞觀, 중국 당 태종 연호) 13년(기원전 639년) 벼락으로 인하여 불당(佛堂)과 칠층탑(七級浮圖), 회랑과 승방(廊房)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7층 목탑, 불당, 회랑(回廊), 승방 등을 갖춘 왕실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는 중국 남조 시대 때 관세음신앙에 대한 책 3권이 발간되었으며, 12세기 일본 교토의 청련원(靑蓮院)에서 이 3책을 묶은 필사본 끝에 ‘백제 관련 기사’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무왕 40년(639)에 벼락으로 절이 모조리 불에 탔을 때 탑 아래 넣어 두었던 동판에 새긴 금강반야경과 불사리만은 보존되어 다시 절을 지은 후 보관했다고 한다.

탑터로 생각되는 지역에서 제석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됨으로써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주목되는 점은 1965년 백제 무왕의 궁터라고 전하는 왕궁평 성안의 석탑에서 발견한 유물과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몇 안되는 백제 절터로서 문헌기록에서 절을 지은 시기와 폐허가 된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 무왕대의 왕궁평 유적과의 관련성, 백제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나왔다는 사실로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제석사지 폐기유적 발굴조사 결과 천부상(天部像)과 나한상, 그리고 악귀상이 출토됐다. 천부상(天部像)은 여래, 보살, 명왕에 이어 최하위에 놓인 존상의 총칭한다.

출토된 천부상은 머리 부분의 파편만 남은 상태로, 살짝 다문 입술, 지그시 내려가 가늘게 뜬 눈매, 길게 늘어진 도톰한 귓불, 살짝 두툼한 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나한상(羅漢像) 혹은 불제자(佛弟子)로 추정되는 2점은 지그시 감으면서 강인한 느낌을 주는 눈매, 두툼한 코, 둥그스름한 정수리가 잘 표현되어 있어 흥미롭다. 또 악귀상(惡鬼像)은 동그랗게 뜬 채로 옆을 응시하는 눈, 살짝 들린 들창코, 야무지게 다문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이빨와 송곳니 등이 잘 표현되어 있고, 머리와 뺨, 턱까지 온통 털로 덮여 있으며 눈동자에 유리질이 남아 있다.

기존에도 악귀상이 출토되기도 했지만 이번에 나온 유물은 사람보다 동물 느낌이 난다는 점이 예전 출토품과 다르고, 눈에 유리가 남아 있는 것도 독특하다.

1989년부터 진행되어 온 발굴조사는 북편 구릉지역 조사를 통해 백제시대 궁성 내부 후원(後苑)의 존재와 물길(曲水路), 보도시설(步道施設), 석축시설(石築施設) 및 건물터 등으로 구성된 내부 시설이 최초 확인됐다.

곡수로는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로 크게 두 줄기가 확인됐다. 그 중간에는 물을 저장하여 수량을 조절하기 위한 네모난 집수시설(集水施設)이 만들어져 있다. 곡수로의 너비는 80~140㎝이고 단면은 바닥이 편평한 U자형인데, 현재까지 확인된 총 길이는 228m이다.

이는 중국 동진(東晉)시대부터 유행했고 일본 헤이죠큐(平城宮) 동원정원(東院庭園) 등에서 채택된 물길 형태로 후원의 중심 요소로 확인되어 동아시아 고대 원림 조성방식의 비교 연구가 가능해졌다.

제석사지 2차 조사에서는 가람 배치가 기본적으로 사비기 백제의 사찰과 동일하며,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확인했다. 또한 목탑 등 기단 기초부의 독특한 조성 방식을 규명한 바 있다./이종근기자



이전 조사에서 확인된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이외에 회랑지, 중문지, 동·서건물지가 추가 확인됐다. 목탑지의 중심에서 동쪽으로 42.2m나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된 동회랑지의 폭은 7.8m로 그 폭이 6.8m인 미륵사지 회랑 등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 사찰의 회랑 중 가장 넓다.



또한, 목탑지와 금당지 사이의 서편에서 목탑과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한 방형 건물의 기초부(동서 21.5m, 남북 20.8m)가 새롭게 확인돼 제석사의 조성 및 변천양상을 밝히는데 새로운 단서가 된다.



건물 기초부는 목탑 기단 기초에서 보이는 달구질흔(고대 건물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진 흔적)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하다. 네 모서리에서는 목탑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계단상의 작업 통로가 발견되었는데 작업이 끝난 후 이 부분도 정교하게 판축 했다.



금당 서편의 방형 건물은 목탑과 그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하기 때문에 목탑과 아주 유사한 성격의 건물로 추정되는데, 남북 편에 금당이나 중문 등 가람으로 추정할 만한 별다른 건물이 없어 그 조성 배경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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