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무령왕릉을 지키던 상상의 동물, 진묘수(鎭墓獸).
어둠 속에서 왕의 길을 수호하고, 떠나는 이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믿음으로 조각된 이 돌짐승은 오늘날 국립공주박물관의 상징이자 마스코트로 살아 있다. 그러나 진묘수에게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다. 바로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출발지의 문제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정리한 최근의 학술 보고에 따르면, 진묘수(석수)와 지석의 재질은 모두 각섬석암이며, 이 암석은 공주 일대에서는 산지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 반면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일대에서 다량 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는 공주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장수 또는 인근 지역에서 돌을 조달해 제작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이 대목은 단순한 산지 추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보급 문화유산의 서사 속에 전북 장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진묘수는 더 이상 공주만의 상징이 아니라, 제작과 이동, 교류의 경로를 통해 장수와 연결되는 유산이 될 가능성을 품게 됐다.
여기에 고대 기록이 던지는 한 줄의 문장도 흥미롭다. 『일본서기』에는 반파국(伴跛國)이 ‘진기한 보물(珍寶)’을 바치며 기문(己汶)의 땅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 시기는 무령왕이 남하 정책을 펼치며 전북 남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때와 맞물린다. 곧바로 그 진보가 진묘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장수가 ‘석재의 고향’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진보’라는 단어가 남기는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장수는 이제 막연한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과 기록이 함께 건드리기 시작한 역사적 출발선에 서 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현실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에서 진묘수를 직접 만날 수는 없을까.”
그동안 국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소속 국립박물관, 지자체가 협력해 국보급 문화유산을 지역 공립박물관에서 소개하는 ‘국보 순회 전시’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이는 보존을 이유로 멈춰 세우기보다, 적극행정을 통해 문화유산의 공공성과 접근성을 확장하려는 정책적 전환으로 읽힌다.
핵심은 분명하다. 좋은 문화유산은 수도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지역에서도 동등하게 향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장수역사전시관 특별전 〈진묘수의 고향 나들이〉는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제안이다. 국립공주박물관과 장수군이 협력해 ‘실현 가능한 방식의 문화 교류’를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보존과 안전 기준이 충족된다면 실물 전시를 1순위로 검토할 수 있고,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고정밀 복제품, 3D 스캔, 영상, AR 등으로 ‘가장 진짜에 가까운 전시’를 구성할 수 있다. 핵심은 무조건 옮기자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 있다.
전시가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메시지는 단순해야 한다. 관람객이 전시장을 나서며 기억해야 할 것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첫째, 진묘수는 무령왕릉을 지키던 수문장이다.
둘째, 그 몸통의 돌이 장수와 연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셋째, 『일본서기』의 ‘진보(珍寶)’ 기록이 상상력을 더한다.
이렇게 정리되는 순간, 전시는 하나의 역사 추리극이 된다.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고, 어른들도 질문을 품게 된다. ‘국보의 고향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강력한 콘텐츠다. 장수는 더 이상 단순한 원료 산지가 아니라, 국보의 이야기를 함께 완성하는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과제도 있다. 진묘수 머리 위에 얹힌 나뭇가지 형태의 철제 뿔이다. “그 철은 어디에서 왔을까. 장수의 제철 유적과 연결될 가능성은 없을까.” 앞으로 필요한 것은 추정이 아니라 과학적 검증이다. 철 성분 분석과 제작 흔적 조사, 장수 지역 제련 부산물과의 비교 연구가 이뤄진다면, 장수는 ‘돌의 고향’을 넘어 백제와 연결되는 ‘기술의 현장’으로까지 확장된 이야기를 품을 수 있다. 연관성이 약하더라도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를 구분하는 과정 자체가 서사를 단단하게 만든다.
전시의 깊이를 더할 소재도 있다. 완주 상동에서 확인된 청동칼 거푸집과 녹반석 벼루 역시 각섬석암·곱돌 계열 석재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장수 일대를 산지로 한 돌이 왕릉 조형물뿐 아니라 제작 기술과 문방 문화, 생활과 지식의 기반까지 떠받쳤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연결이 전시에 담긴다면 〈진묘수의 고향 나들이〉는 한 점의 국보를 넘어 전북권 석재 문화와 기술 네트워크를 조망하는 특별전으로 확장될 수 있다.
국보도 길을 나서는 시대다. 공주의 수호신 진묘수가 장수에 한 번 걸어오는 순간, 장수의 질문은 전북의 자산이 되고, 나아가 지방 문화 교류의 하나의 모범 사례로 남을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진지하게 상상해볼 때다./최훈식 장수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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