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동학]연산전투 전사자 스기노 토라키치(杉野虎吉) 상등병의 역사적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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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일본 후지국제여행사 주관「나카츠카 아키라 선생 연구로부터 배워 서로 말하는 모임 투어」(위 사진, 이하 투어)에 참가했다. 투어는 2023년 10월에 서거한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1929-2023) 나라여자대학(奈良女子大學) 명예교수의 업적을 추모하는 한편, 동학농민혁명 당시 충청도 연산전투(連山戰鬪)에서 전사한 일본군 후비보병(後備步兵) 제19대대 제3중대 소속 스기노 토라키치(杉野虎吉) 상등병 및 일본군에 의한 동학농민군 학살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종군일지를 남긴 제19대대 제1중대 소속 쿠스노키 비요키치(楠美代吉) 상등병의 고향인 도쿠시마현 아와시(德島縣 阿波市)와 요시노가와시(吉野川市) 답사를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1997년 11월 28일 홋카이도대학의 이노우에 가츠오(井上勝生) 교수와 함께 도쿄 치요다구(千代田區) 나가타초(永田町)에 있는 일본 국회도서관 신관 4층 신문열람실을 찾은 적이 있다. 이른바 ‘동학당 토벌대’로 불린 후비보병 제19대대 병사들의 출신지 즉 에히메(愛媛), 카가와(香川), 코치(高知), 도쿠시마(德島) 등 4개 현에서 간행되고 있던 지방신문이 소장되어 있는지 만일 소장되어 있다면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사가 실제로 실려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몇 시간에 걸친 조사 끝에『도쿠시마 니치니치신문』(德島日日新聞)에서 관련 기사 2건을 찾았다. 1894년 8월 15일에 경상도 문경 병참사령부에 부임한 시마다 다메사부로(島田爲三郞) 군조(軍曹)가 동년 12월 17일 자로 고향인 도쿠시마현 나가군 사카노무라(那賀郡 板野村)로 보낸 편지 내용을 보도한 1895년 1월 9일자 기사, 1894년 12월 10일 연산전투에서 전사한 스기노 상등병의 장례식 소식을 전하는 1895년 3월 1일자 기사였다. (아래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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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시마니치니치신문』(德島日日新聞) 1면의 스기노 상등병의 장례식 기사>



후일, 이노우에 교수의 시코쿠 현지 조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지만 동학농민혁명 당시『도쿠시마니치니치신문』을 비롯한 시코쿠 4개 현의 지방신문은 조선으로 출병한 병사들의 전병사(戰病死) 소식을 포함하여 고향에 남은 가족들의 소식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연산전투에서 전사한 스기노 상등병 관련 기사이다. 스기노 상등병에 대해서는 1895년 1월 16일자, 동 1월 23일자, 동 3월 1일자 지면에서 연속 보도했다. 3월 1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다.



전사 군인과 병사 군인의 장례식

고(故) 후비보병 상등병 스기노 도라키치[杉野虎吉] 씨의 장례식은 예보한 바와 같이 지난 2월 24일 오후 3시에 아와군[阿波郡] 이치카무라[市香村] 젠뉴지섬[善入寺磧]에서 불교식으로 거행되었다. (중략) 스기노 씨는 지난해(1894) 12월 10일에 조선국(朝鮮國) 연산현(連山縣)에서 동학당에 의해 전사했다.

위의 스기노 기사는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증언해 주었다. 하나는 우금티전투가 끝난 지 1주일 뒤인 1894년 12월 10일에 충청도 연산에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전투에서 스기노 상등병이 전사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로써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 바 없었던 연산전투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1997년 당시에는 연산전투의 실체를 해명하는 연구를 진행할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도쿄에 있는 외무성 산하 외교사료관,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 도서관, 국회도서관 헌정 자료실, 국립 공문서관, 국문학자료관, 도쿄대 법학부 내의 메이지신문잡지문고(明治新聞雜誌文庫) 등에 소장된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 조사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산전투 현장을 찾아 그 실체를 밝히는 일은 2008년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되었다. 그해 12월 19일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가「제2차 동학농민전쟁과 일본군」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에 이노우에 교수가 발표자로 참석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학술회의 이튿날인 12월 20일 택시로 후비보병 제19대대 제3중대가 남하했던 험준한 고개를 넘어 연산역(連山驛)으로 향했다. 연산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5시 반을 넘어 날은 이미 캄캄해진 상황이었다. 이날 이노우에 교수와 필자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연산을 떠났다. 그후 3년이 지난 2011년 3월 이노우에 교수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스기노 상등병의 충혼비(忠魂碑)를 발견했다는 획기적 내용의 전화였다. 며칠 뒤 이노우에 교수는 비문 사진과 함께 그 내용을 팩스로 보내주었다.(아래 사진 참조)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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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시마현 아와시 이치바초 옛 카가미무라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스기노 토라키치 상등병의 충혼비>



오호 충혼비

육군 보병 상등졸, 스기노씨, 통칭 토라키치, 아와인이다. (중략) 메이지 27년 갑오(甲午)의 용차(龍次), 조선국 소요에 봉기가 일어났다. (중략)

충청도 연산현(連山縣)에서 토벌하려고 했을 때 호비(護備; 後備의 誤記) 보병 제19대대에 소속되어 버티고 저항하는 것을 유린하기에 이르렀을 때 동학농민군 사방에서 내습하여 총탄이 우레 소리와 함께 번개 치듯 별처럼 쏟아졌다. 검은 연기가 땅을 덮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동년 12월 10일 탄환이 아래턱을 관통하여 마침내 운명하였다. (고딕은 번역자)



충혼비 발견 소식을 접한 필자는 그해 8월 10일 다시 연산으로 향했다. 3년 전, 날이 어두워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연산전투 현장을 확인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이번에는 면사무소를 찾아가 면장으로부터 연산면의 역사와 관내 상황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 본부와 제3중대가 주둔했던 연산현 관아의 아문(衙門)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97년 11월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스기노 상등병의 장례식 기사를 발견한 지 14년 만에 비로소 연산전투 현장을 확인하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스기노 상등병의 충혼비 발견 및 그가 전사한 연산전투 현장을 실제로 확인한 것은 동학농민혁명 연구는 말할 것 없고 한국근대사 및 일본근대사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했다. 첫째는 우금티전투 1주일 뒤인 12월 10일 연산에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있었으며, 그 전투에서 스기노가 전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12월 10일 연산전투에서 전사한 스기노 상등병의 죽음이 1935년에 일본 육해군성과 야스쿠니신사가 편찬한『야스쿠니신사충혼사』(靖國神社忠魂史)에서는 7월 29일의 성환전투(成歡戰鬪) 즉 일본군과 청국군 간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날조된 사실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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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노 토라키치 상등병 전사 사실을 날조한 『야스쿠니신사충혼사』>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당시 전사자 명부를 싣고 있는『야스쿠니충혼사』(靖國忠魂史) 제1권 권말의 인명(人名) 색인에는 스기노 상등병이 청일전쟁의 서전(緖戰) 즉 1894년 7월 29일 성환전투의 전사자 41명 가운데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오사(五師) 후보(後步) 독십구대(獨十九大) 삼중(三中)

메이지이십칠년 7월 29일 성환(成歡)

상병(上兵) 스기노 토라키치(杉野虎吉) 도쿠시마(德島)



‘오사(五師) 후보(後步) 독십구대(獨十九大) 삼중(三中)’은 제5사단 후비보병 독립 제19대대 제3중대의 약기(略記)이다. 성환전투 첫날인 7월 29일 전사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후비보병 제19대대는 7월 23일에 부대 편성 명령이 있었고, 성환전투가 있던 7월 말에는 시모노세키(下關) 수비대에 임하기 위한 부대 편성 도중이었다. 동 부대가 조선으로 건너오는 것은 11월이 되어서 일이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역사의 날조가 아닐 수 없다.『야스쿠니신사충혼사』의 역사의 날조는 너무나 엉성하고 또한 난폭하기 짝이 없다. 스기노의 충혼비는 바로 그 역사의 날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2025년 3월 한국 시민들과 연구자들이 도쿠시마현 아와시 이치바초(市場町) 옛 카가미무라(香美村)에 있는 스기노 충혼비를 찾아간 이유도 바로 그 역사의 증언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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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수(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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