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AI 시대의 정신개벽과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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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는 다시금 자국 중심주의와 패권 경쟁의 긴장 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동맹의 원칙보다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정책으로, 이는 20세기 서구의 침략적 식민주의를 재현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가 그린랜드 영유권 문제를 놓고 유럽연합(EU)과 충돌하고 있는 사례는 미국의 일방적 정치야욕이 얼마나 노골적인지를 보여준다. 세계 질서는 다시 강대국 중심의 규칙과 종속 구조로 회귀하는 양상이며, 강대국은 규칙을 만들고 약소국은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AI 인공지능 기술은 질병 치료, 과학 연구, 환경 문제 해결 등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동시에 거대 기술기업 중심의 종속 구조를 심화시키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더 나아가 AI는 전쟁의 살상무기로 전용되거나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제어하기 위한 국제 규범과 협력이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구속력 있는 글로벌 법령이나 규범은 미비한 상태다.

2020년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발표한 ‘AI 윤리를 위한 로마 선언’이나 유럽연합(EU)의 AI 윤리 및 규제 정책은 투명성, 책임성, 공정성, 개인정보 보호 등 인간 중심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입법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2026년 1월 22일 시행)은 AI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면서도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시스템”에 대한 지침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 유럽과 종교계, 국내의 AI법은 공동체의 상생, 인류 정신세계, 세계시민성의 차원을 아직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문명 전환의 국면에서 우리는 한국의 종교·사상 전통이 제시했던 “개벽(開闢)”이라는 정신을 새롭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종교와 사유 전통에서 나타난 개벽사상은 21세기 문명 전환의 지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자산이다. 동학의 시천주·사인여천은 하늘의 초월성을 인간의 존엄과 연결시키며 공공성의 주체를 권력자가 아닌 시민으로 전환했다. 대종교의 홍익인간은 민족적 자각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 세계보편성과 인류평등을 향한다. 증산의 인존과 해원상생은 적대와 경쟁을 넘어 상생의 문명을 구상한 것이며, 원불교의 물질개벽·정신개벽은 과학기술문명과 정신문명을 조화시키는 철학을 제시했다. 이들 개벽사상은 서구 근대가 강요했던 문명과 비문명,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의 대립적 구도를 넘어서는 문명적 상상력을 담고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정신의 개벽, 즉 열린 정신과 공공성의 개벽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개벽사상은 단순한 종교적 담론이 아니라 글로벌 위기에 대응할 문명론적 사유이며, AI 윤리 논쟁에서도 상생 개념은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상생의 원리는 정치·경제·사회뿐 아니라 생태 영역을 통합하는 문명 윤리이자, 기술의 방향성과 기준을 조정하는 가치 축이다. 개벽의 핵심 질문인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는 기후위기의 생태적 공생, 전쟁 시대의 평화 구상, 세계시민 도덕의 형성을 요구하는 인류 보편적 철학이다.

정신개벽은 종교적 내면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생명 사이의 관계 윤리를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공성은 ‘나’와 ‘남’을 둘로 구분하지 않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나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 위에 세워질 수 없으며,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임을 자각해야 한다.

내 이웃을 한울님(하늘님)처럼 대하는 태도, 억울한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마음, 강자의 위치에 선 사람이 약자를 배려하는 실천은 작은 윤리적 행동이지만, 이러한 흐름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거대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AI 시대의 문명 전환은 기술만이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공공성의 개벽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개벽사상은 K-정신문화로 새로운 희망의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는 인류 전체가 직면한 공동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의 문명적 자원이다./박광수(원광대학교 명예교수, K-전통문화학술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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