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의 거목’으로 불려온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25일 별세함에 따라 그의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여권에 따르면 장례는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5일간 진행되며, 더불어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주관할 예정이다.
사회장은 국가 발전과 민주주의 진전에 공헌한 인사의 별세 시 정당이나 시민사회가 중심이 돼 치르는 장례 형식이다.
과거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이희호 여사 역시 사회장으로 영면에 들었다.
국가장이 아닌 만큼 정부가 아닌 사회 각계가 고인의 뜻을 기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출발해 입법·행정·당 운영을 두루 거친 한국 정치사의 상징적 인물이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이던 1970년대 유신 체제에 맞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혹독한 시기를 거치며 재야 민주화운동의 중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그는 정책 전문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초대 교육부 장관을 맡아 교육 개혁과 대입 제도 개선을 추진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를 지내며 ‘책임 총리’의 상징으로 평가받았다.
원칙과 소신을 앞세우면서도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중시한 그의 리더십은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된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당 체질 개선과 전략적 선거 구도를 통해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단일 정당 기준 역대 최다인 180석 확보라는 압승을 이끌었다.
이후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자 조언자로서 영향력을 이어왔다.
이 수석부의장은 최근 민주평통 아시아·태평양 지역 운영위원회 회의 참석차 베트남 호치민을 방문했다가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현지에서 응급 시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향년 73세.
이재명 대통령은 고인의 위독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식 정무특보를 현지로 급파했으며, 별세 직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스승을 잃었다”며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민주주의 가치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 비전을 끝까지 밀고 나간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
특히 남북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고인의 신념을 높이 평가했다.
정치권의 추모도 이어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분”이라며 명복을 빌었고, 국민의힘 역시 “대한민국 정치사의 큰 별”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민주화의 거리에서 시작해 국정의 중심까지 걸어온 이해찬의 정치 인생은 한국 현대정치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마지막 길은 사회장이란 이름으로,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서울=정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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