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1 사계절 잎이 지지 않고 늘 푸른 소나무는 예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칭송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건 소나무 등 침엽수는 활엽수와 달리 바람 부는 방향을 향해 몸을 휘어서 마치 역경과 탄압에도 맞서는 모습으로 자란다는 것이다.
지난달 12월 24일 성탄절 이브에 ‘산림기사’ 합격통보가 왔다. 공부를 시작한 지 7개월만이다. 국가기술자격증인 ‘산림기사’는 산림 경영계획과 분석, 산림휴양시설의 설계 및 관리 등의 업무, 사방댐과 임도 설계와 시공, 벌목 기술 등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이걸 따려고 마음먹은 건 삼락원을 준비하면서다. 우리 산을 어떻게 개발하고 이용할까 협의하기 위해 진안군청을 드나들면서 담당직원과 얘기하다 보니 모르는 용어가 너무 많았다. 산림경영계획서, 임반, 소반, 경급 등 처음 들어보는 말이 수시로 나왔다. 이해가 안되니 대화가 끊기고, 내가 의도하고 계획하는 걸 전달하기도 어려웠다.
이뿐만 아니다. 관련 자료나 법령을 찾아보면 일본식 어투와 한자어가 섞인 용어가 섞인 무슨 암호문을 보는 것 같았다. 간벌(間伐) 무육(撫育) 혼효림(混淆林) 낙지(落枝) 수하식재(樹下植栽) 같은 말은 한자어라서 그래도 해독이 가능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말도 적지 않았다. 제벌(除伐·잡목 솎아내기 또는 어린나무 가꾸기) 폭목(暴木·형질이 나쁘면서도 생장력이 왕성해 다른 수목에 피해를 주는 나무). 역지(力枝·활력이 가장 왕성한 으뜸가지) 피압목(被壓木·하층에 있어서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하는 나무). 교림(喬林·종자로 발생한 수목) 왜림(矮林· 움이나 맹아로 발달한 수목), 중림(中林·용재생산과 연료재 생산을 함께 적용한 산림) 등 끝이 없었다.
어쨌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고, 갑갑한 놈이 송사한다지 않은가? 은퇴후 남아도는 게 시간인지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시험 볼 수 있는 응시자격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기본적으로 4년제 대학 산림학과, 산림과학과, 산림자원학과, 임(산)학과, 임산공학과 등을 졸업했거나 학점은행제에서 일정 학점 취득해야 한다. 또 유사한 분야의 기사 자격증을 갖고 1~3년의 실무경력이 있거나 관련분야에서 4년이상 경력이 필요했다. 나는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긴 하지만 실무경력이 없어서 임업분야에 3년 이상 종사했다는 증빙을 해야 했다.
나는 임업후계자로서 조림이나 육림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해당지역 이장의 사실확인서와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받아야 했다. 나는 근래 3년 넘게 삼락원에서 나무를 심고 농사를 지었고, 이장도 아버지가 아는 분이라서 쉽게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이장을 만나기 위해서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내가 2017년에 임업후계자로 지정됐고 동네 어릴 적 친구들이 이 사실을 확인해주었어도 이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유는 사실확인서 내용에 사실과 다를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끝에 진안군청을 통해 사정을 얘기하여 읍장의 중재를 거쳐 겨우 사실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산림기사 준비한다는 사실이 진안군청은 물론, 외사양마을 전체에까지 소문이 났다. 만약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망신을 당할 뻔 했다. 이런 요건과 절차를 두는 건 자격이 안되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취지겠지만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임업후계자의 경우는 유사분야 기능사 자격이 없어도 사실확인서만 있으면 실무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괜히 기능사 자격증 딴 후 3년을 기다린 셈이다.
산림기사 준비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큰 고비였던 사실확인서 제출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시험준비에 들어갔다. 시험은 1차에서 조림학 산림보호학 임업경영학 임도공학 사방공학 등 5과목 4지 선다형으로 100문제(100점 만점)를 풀고, 1차 합격자(60점 이상)를 대상으로 세 달 후에 2차를 봐야 한다. 2차에서는 임업경영학 임도공학 사방공학에서 필답형(60점), 현장에서 산림경영계획과 야장작성 등 작업형(40점)을 치르고 두 점수를 합쳐서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이다. 1차 공부는 대부분 암기해야할 내용이었다. 산림보호학 예를 들면 해충의 가해양식(식엽성, 흡즙성, 천공성, 충영성, 종실가해)에 따른 분류, 1년에 발생하는 횟수에 따른 분류, 월동형태(알, 유충, 번데기, 성충)에 따른 분류와 특징, 대처법 등을 외워야 한다. 세상에 수목을 해치는 벌레가 이렇게 종류가 많은 줄 처음 알았다.
2차 필답의 경우 15문제가 나오는데 1차에서 나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거나 단답형으로 쓰는 문제가 나온다. 수목의 생장량이나 임지와 수목을 평가하는 복잡한 계산을 묻는 문제도 출제된다. 또 작업형에서는 나무의 높이를 재서 일정한 면적의 수목 재적을 계산하는 것과 5종의 나뭇가지를 페트병에 꽂아두고 그 이름을 맞히는 것도 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나무와 관련된 재미난 지식과 현상들도 알게 됐다. 그중 하나가 편심생장이란 것이다. 나무가 곧게 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휘는 이 현상의 원인중 하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침엽수와 활엽수가 정반대 방향으로 휜다. 즉 활엽수는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휘는데 반해 침엽수는 바람을 맞는 쪽으로 휘어 자란다. 활엽수의 경우 자연에 순응한다고 볼 수 있는데, 침엽수가 바람에 맞서는 쪽으로 가는 건 무슨 이유인가? 마치 바람에 맞서서 ‘해볼 테면 해봐라’ 하는 듯 꿋꿋하고 도전적인 모습이다. 논어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말처럼 절개와 지조의 상징다운 자세 아닌가?
그 비밀은 성장호르몬 옥신의 분비에 있다고 한다. 침엽수는 바람이 부는 반대 쪽에 옥신이 분비되면서 세포분열이 활발해진 결과, 바람에 맞서는 형태가 되고, 활엽수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같은 나무인데도 옥신은 왜 정반대로 작동하는지, 신비로울 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과실나무의 경우 개화결실을 촉진하기 위해 물을 적게 주고 저온으로 자극하는가 하면 뿌리와 가지를 자르거나 철선으로 묶어주는 등 고통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무가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서 본능적 반응으로 빨리 성숙하고, 더 강해지면서, 열매도 빨리 맺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극이 지나치게 되면 나무가 죽겠지만 적당한 정도의 위험과 스트레스는 생물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1차 필기시험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던 8월 14일에 봤다. 이 시험은 PC 모니터를 보면서 치르는 CBT(Computer Based Testing) 형식으로, 합격여부와 점수는 답안지를 제출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86점이었다. 2차 시험은 이로부터 3개월 후인 11월 8일에 필답, 이튿날 9일 작업형을 잇달아 치렀다. 그리고 한 달 여 후에 통보된 점수는 총 73점이었다.

그림2 산림기사 2차 작업형 하층식생 수종 구별에서수종 구별 시험에서는 페트병에 잎이 달린 나뭇가지를 꽂아두면 수험생이 옆에서 보고 답을 적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산림기사는 1년에 3차례 정기시험이 있고 평균적으로 연간 2,000여명이 합격한다. 응시자 연령층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자격증을 땄다고 바로 일자리가 생기지는 않지만 대체로 산림경영과 관련된 용역업체나 산림조합, 공단 등에 취업한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산불이 간간이 발생하면서 관련된 기관도 신설되고 장차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60세 이상 은퇴자에게는 얼마나 기회가 주어질지 의문이다.
산림기사 준비하면서 좋았던 것은 시간이 모르는 순간에 금세 간다는 것이다. 책을 찾아보고 틈날 때 메모해둔 걸 암기하다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고 지식을 쌓아가는 게 즐겁고 보람 있다. 나아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지만 무언가를 깨닫고 외우는 동안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듯하다.
’욕심이 적어야 채울 수 있고, 일은 간략해야만 공을 이룬다‘(浴少欲可滿, 事簡功可成)는 말처럼 큰 목표보다는 작은 목표를 통해 성취감을 얻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최진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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