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개똥이

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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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는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아침 안개처럼 은은한 빛을 머금은 피부를 가졌어요. 마을 아이들은 은호의 맑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거나 친구와 토라졌던 마음을 잊곤 했지요. 그렇다고 은호가 아이들을 위로해주거나 놀아주는 것도 아니었어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는 게 전부였지요.

은호 엄마는 은호를 개똥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니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개똥이라고 불렀지요. 개똥이 엄마는 과일 장수였어요. 함지박에 과일을 담아 머리에 이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팔고 다니다가 해 질 무렵에 함지박을 옆구리에 끼고 왔어요.

그녀의 얼굴빛은 노란 참외처럼 보였고, 축 처진 어깨는 버드나무 가지 같았어요. 개똥이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개똥아, 개똥아 라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달려가 안기거나 손을 잡고 흔들며 갔어요.

이후 개똥이 엄마는 리어카를 마련하였고, 과일 종류도 많아졌어요. 개똥이는 가끔 리어카를 타고 읍내 장에 간다고 손을 흔들며 지나가곤 했지요. 아이들은 엄마가 과일 장수라서 정말 정말 좋겠다고 개똥이를 무척 부러워했어요. 이뿐만이 아니었어요. 개똥이 엄마는 팔고 남은 과일을 마을 사람들에게 반값에 주거나 곡식과 찬 거리로 바꾸기도 했지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개똥이네 토방에 과일이 담긴 그릇들이 즐비해 있었고, 학교에서 돌아온 개똥이는 마루에 오도카니 앉아 과일을 팔았어요.

개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개똥이네 집 앞에서 놀자고 의견을 모은 뒤에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비석 치기, 숨바꼭질 등을 하고 놀았어요. 개똥이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으로도 좋았던지 박수를 치기도 하고 깔깔깔 웃기도 했지요. 개똥이가 좋아하니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나서 과일 장수 놀이를 했어요. 개똥이 아재, 노랗고 달콤한 참외 두 개만 주세요. 얼마예요? 저기 부끄러워 얼굴 붉히고 있는 토마토 누나도 주세요. 머리가 큰 수박은 이곳에서 먹기가 곤란하니 우리 엄마가 들일 마치고 오면 사러 올게요. 라고 말하면 주먹을 들어 올리곤 했지요.

여름방학 무렵이었어요. 아이들이 개똥이네 집 근처에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딱지치기, 구슬 따먹기 등을 하고 있는데, 엉엉 소리가 들려와 달려가 보니 개똥이가 마루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아프다고 울고 있었어요. 개똥이는 엄마는 개똥이를 리어카에 태우고 읍내에 있는 약방을 들락거렸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던지 얼굴이 창백했어요. 마을 어른들은 개똥이네를 걱정하며 음식을 갖다 날랐지만 잘 먹지 않았어요. 토방 위의 과일들은 파리들의 먹잇감이 되거나 놀이기구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해 가을, 개똥이 엄마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치료받게 해야겠으니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팔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어요.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고 개똥이의 병이 빨리 낫기를 바란다며 돈을 주기도 하고 등을 쓰다듬으며 안아주었어요.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은 뒤에 부엉이 울음소리를 신호 삼아 만났어요. 그리고 준서네 집에서 색종이로 학을 접고 손 편지를 썼어요. 개똥이의 병이 빨리 나아 학처럼 멋지게 훨훨 날기를 소망했지요. 개똥이가 이사 가는 날, 선물을 전하면서 손을 흔들었어요. 개똥이는 아이들의 따듯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어요. 개똥이네가 서울로 간 뒤에 마을은 한동안 조용했어요. 개똥이 엄마가 ‘참외 사세요, 미국 자두도 있어요.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과일이 있어요. ‘개똥아, ‘개똥아’라고 외치는 소리까지 모두 가지고 갔기 때문이지요.



노은정 아동문학가. 수필가는



현)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아동분과 위원장. 한국아동문학회 교육문화발전 위원. 해법 글사랑 논술 교습소 원장

저서) 동시집 '호박이 열리면', '왕솜사탕 ' 수필집 '하루살이' 동화집'아기 다람쥐 외출'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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