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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사회사전 ‘사회조직’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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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민속사회사전의 두 번째 편인 ‘사회조직’을 펴냈다.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 디지털의 변화를 거치며 공동체의 형태와

사회적 관계망이 크게 달라져 왔다. 이번 사전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형성·유지되어 온 한국 사회조직의 다양한 모습과 의미를 한데 모아 정리했다. 민속이 농촌이나 과거의 전통사회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도시화와 현대 일상 생활에서도 살아 있는 문화임을 이해할 수 있다. 전북 관련 항목을 찾아 소개한다. 편집자



△ 남원 기지입암향약(機池笠巖鄕約)

남원시 금지면 입암리에서 조선 정조 시대에 쓰인 220여년 전 향약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향약안은 당시 마을의 자치규약을 담고 있는 문서로 ‘마을 헌법’이라 일컬어진다. 이 때문에 조선후기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문헌사료로 평가받는다. 마을에서 보관 중인 향약안은 ‘기지입암향약안(機池笠巖鄕約案)’, ‘기지방입암촌향약안(機池坊笠巖村鄕約案)’ 등 6권이다. 작성일자는 1795년(정조 19년)이며, 작성자는 뒷부분에 김흥백, 박동신으로 적혀있다. 내용은 예, 효 등 인간이 지켜야 할 덕목과 불효, 절도, 소란을 일으킨 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담겨 있다. 기지임암향악은 1833년, 1883년의 조목을 확인할 수 있다.



△ 남원 원동향약(源洞鄕約)

남원 원동향약(源洞鄕約)은 조선 선조 5년(1572)에 설립, 420여 년간 계승된 남원시 주천면 원동(원천동) 지역의 마을 자치 규약 문서로, 199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됐다. 임진왜란 등으로 중단됐다가 그루 1683년에 중수(重修)됐다.

주천면 용궁마을 인근에 정자 육모정과 춘향묘가 있다. 육모정은 용소 앞 널따란 바위 위에 올라선 6각형 모양의 정자다. 1572년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원동(源洞)향약 관련 유적으로, 향약 계원들이 모임을 하던 곳이다. 원래 육모정은 바위 위에 있었지만 큰비로 유실되면서 현 위치에 복원됐다.



△ 남원농악보존회

‘남원농악’은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일원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 좌도농악의 성격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남원농악은 들당산굿, 마당밟이, 판굿으로 구성된 마을굿 특징과 더불어 걸립굿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판굿의 뒷굿(도둑잽이, 재능기) 구성이 특이하며 호남 좌도농악에서만 사용하는 부들상모를 전승자들이 현재에도 직접 제작하여 연행하고 있다.

남원농악보존회는 국가무형유산인 남원농악을 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1997년 류명철이 창립, 현재 (사)국가무형유산 남원농악보존회로 활동하며 농악 공연, 전승 사업, 기록화 사업 등을 통해 남원농악의 흥과 멋을 이어가고 있다. 남원농악은 호남 좌도농악의 특징을 지니며,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현, 국가무형유산)된 중요한 지역 전통예술이다.



△ 어살계

남원 지역에서의 '어살계(漁箭契)'는 과거 섬진강 수계(요천 등)에서 전통 어로 방식인 '어살(나무 울짱 등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시설)'을 공동으로 설치, 운영, 관리하고 그 수확물을 분배하던 마을 단위의 공동체 조직을 말한다.

남원시 대강면 서석리와 전라남도 곡성군 임면 제월리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 여울목에 어살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어살은 임진왜란 때 남원 의병장인 양대박이 군사를 먹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어살과 달리 도깨비살은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았기에 도깨비가 쌓아주었다고 전하며, 부모님 봉양을 위해 어살을 쌓았다는 효성어린 미담도 전해진다. 은어를 잡아 영양을 보충했는데, 논 15마지기와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어살(漁箭)은 조수 간만의 차나 물의 흐름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전통 시설로, 남원·순창·곡성 등 섬진강 주변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발달해 왔다. 어살은 개인 혼자 설치하고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계(契)를 조직하여 공동으로 어장을 관리하고 수확물을 나누었다. 어살은 조선시대부터 이미 중요한 어업 형태였으며, 남원과 같은 강변 지역 사람들에게는 어살계가 생계 수단으로 매우 중요했다. 어살 설치에 필요한 대나무를 모으고 관리했던 조직이 어살계이며, 이는 오늘날 섬진강 하류 지역의 게그물 통발 등 전통 어로 문화의 원형이 됐다.



△ 남원 여성농악단

한국 최초의 여성 농악단은 1959년 남원에 위치한 국악원에서 출발한다. 당시 지방의 국악원은 일제 강점기의 권번과 유사한 기능을 띠며 전문적인 국악 공연자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 역할을 했다. 당시 남원국악원에서 실기를 가르치는 교수자는 김영운, 강도근 같은 판소리 예인들이었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여성 학습자들의 교육을 맡아 전문적인 공연자를 육성하였다. 남원국악원에서 여성 농악 공연을 계획하게 된 계기는 당시 국악원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본격적인 공연 단체로 조직되었다고 볼 수 없는 한시적 기획 속에서 추진되었다. 남원여성농악단 출현 이후로, 1961년에는 같은 남원 지역에서 ‘남원춘향여성농악단’이 공식 출범하게 된다. 이 단체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최초로 공식화된 여성 농악 단체라는 점에서이다. 남원춘향여성농악단은 앞의 남원여성농악단을 능가하는 대중적 인기와 활동력을 보였고, 국극계의 여성 간판스타처럼 스타 농악인이 생겨났으며, 다른 공연예술계를 아울러서도 단연 돋보이는 대중적인기를 누렸다. 앞서 1947년 전재민특별구호회와 경향신문이 주최한 전국민속 예술농악제전에서 순낭자수(純娘子數) 10명으로 편성된 여자농악군(女子農樂軍)이 소개된 비 있으나 한시적 활동에 머물렀다.



△ 위도띠뱃놀이보존회

중요무형문화재 제82-3호로 지정된 위도띠뱃놀이는 170여 년 전부터 위도 주민들이 임금님 진상품인 칠산조기가 많이 잡히는 대리마을 앞 칠산바다에 산다는 용왕에게 만선과 행복을 적은 띠지와 오색기, 허수아비들과 어선 모양의 띠배를 제작해 바다에 띄우는 풍어제이다.

매년 위도띠뱃놀이전수교육관 앞마당에서 풍물패의 마당굿을 시작으로 동편당산제, 원당오르기, 띠배와 제웅 만들기가 진행되고, 마을 뒷편 산자락 주산돌기와 마을 앞 바다에서 용왕굿, 띠배띄우기, 대동놀이 등이 진행된다.

위도띠뱃놀이는 지난 1978년 강원도 춘천에서 개최된 ‘제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리마을 당제의 한 과정인 ‘띠배 보내기’로 출전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위도띠뱃놀이 보존회는 위도띠뱃놀이를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전통의례.의식 보존 단체이다.



△ 이리농악보존회

이리농악은 익산(옛 이리)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익산시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5년은 이리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이리농악보존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그 가치를 보존하고 전승해 온 역사적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

이리향제줄풍류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지방에서 전승되는 현악영산회상이라는 기악곡이다. 관악영산회상과 평조회상의 대칭으로 불리는 음악으로, 이들과는 조(調)와 악기 편성이 다르다. 이리향제줄풍류는 거문고, 가야금, 양금, 단소, 해금, 대금, 피리, 장구 등 여덟 가지 악기로 연주한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악영산회상을 줄풍류라 하는데, 지방에 전승되는 줄풍류를 국립국악원 줄풍류와 구별하기 위하여 향제줄풍류라 이른다. 이리향제줄풍류는 이리향제줄풍류보존회 전수자와 이수생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 임실필봉농악보존회

임실 필봉농악은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으로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필봉마을에는 예로부터 당산굿·마당밟기 정도의 단순한 농악이 전승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이 된 것은 1920년경에 상쇠(패의 지도자 격으로 꽹과리를 가장 잘 치는 사람) 박학삼을 마을로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부터라고 한다. 임실 필봉농악은 쇠가락(농악의 대표격인 꽹과리 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며,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한다 .임실필봉농악은 198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었으며, 양순용 상쇠의 타계 이후 양진성 상쇠가 임실필봉농악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필봉마을농악단의 전통을 계승한 임실필봉농악보존회는 임실필봉농악의 창조적 계승과 문화복지 실현을 위해 2008년 문화복합공간 필봉문화촌을 조성, 교육, 공연, 문화 활동 등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 직월(直月)

직월'(直月)은 과거 향약(鄕約)이라는 지역 공동체 조직에서 중요한 실무를 담당했던 직책으로, 주로 월별 회의나 제사, 강회(講會) 등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주관하며 심부름과 연락을 담당하는 간사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약정(회장)을 도와 회의 일정을 잡고, 구성원들에게 공지하며, 각종 규약 위반 사항을 관리하는 등 향약의 원활한 운영을 책임졌으며, 종종 노복이 있는 부유한 자가 맡기도 했다.

직월이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후기 향촌사회에서 유향분기(儒鄕分岐)가 일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는 향촌 사회에서 양반 사족과 향임직을 맡는 향족이 분리되거나 갈등하는 현상을 말한다. 18세기 남원에서는 유향분기의 결과, 향안(鄕案)이 깨어진 이후 구향들은 풍헌(風憲) 조직을 내세우고, 그 직임 가운데 하나로 직월(直月)을 추대했다./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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